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복잡하고도 하루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안철수 교수의 쓰나미가 기존 정당정치와 정당구조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뒤 대표적 시민운동가인 이석연 전 법제처장과 박원순 변호사가 출마를 공식화하면서 기성 정치사회가 혼돈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 시민사회단체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대부분의 시민단체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다양한 사회영역 활동의 산물로 만들어졌고 이후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지방의 특수한 정치사회적 이슈를 중심으로 확대해 온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이 전 처장이나 박 변호사가 범여권 또는 범야권 통합후보로 거론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기존 정당정치가 국민들에게 외면당하고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기성 정당들이 정당의 두 가지 목표 중 득표에만 신경을 쓰고 국민을 위한 정책 추구에는 큰 기여를 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정치 무관심과 정치 혐오를 가져왔고 1990년대 20% 정도에 불과했던 무당파 유권자들이 최근 절반을 넘어 모든 선거 결과가 무당파 유권자의 손에서 결정되는 아이러니가 생겼다.
우리나라 시민사회단체가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사회 개혁과 변화를 주도하는 선봉장 역할을 해온 것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이 국민 전체를 위한 시민민주주의 형성에 어떠한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이번 두 시민 후보의 갑작스러운 출마로 기성 정당들은 적잖이 놀라면서도 이제 좋든 싫든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정당정치의 주체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시민 후보들이 주도권을 차지하는 형국이니 사실상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종언을 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사회는 일부 엘리트 위주의 단편적 사회로부터 민주주의적 시민사회로 이동하는 과도기에 있다. 이번 시민 후보들이 어떠한 성과를 내고 또한 당선돼 그들의 역량을 얼마나 실천에 옮길지 모르겠으나 민주주의 가치 구현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기성 정당에 대한 경고와 반성을 촉구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자유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데 일조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우리 정치 풍토에서 시민 후보가 새로운 정치사회의 대안세력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역이나 특수한 계층의 적극적 지지 없이 단순 다수제의 소선거구제하에서 정당 지지 구도가 형성되는 정치 현실을 감안할 때 대안 정치세력의 등장과 성공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1997년 대선 당시 신한국당 이인제 후보가 국민신당을 창당했으나 오래가지 못했고,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무소속 정몽준 의원이 국민통합21을 창당했으나 역시 성공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개인적 인기나 의협심만으로 현실 제도권 내 정당정치의 일원으로 뿌리 내리기가 쉽지 않다.
이 전 처장과 박 변호사의 출마로 인물 경쟁력이나 정책 대결 구도가 아닌 보혁의 정치이념 대결 구도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기존 정당정치의 무관심과 불안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정당체계의 재편을 가져오는 점화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정치실험의 의미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서울시장 선거는 두 시민 후보의 등장으로 특정 후보자에 대한 유권자의 찬성과 반대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정치 지각의 변동이라는 큰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두 후보가 평소 생각대로 사회 내 시민적 공간을 확대하고 정책에 대한 국민의 참여를 높여 정부와 지방자치 사이에서 올바른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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