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대규모 정전사태로 나라가 큰 혼란에 빠졌다. 전국 212만 가구에 전기 공급이 중단됐고 중소업체 공단 554곳이 가동을 중단했으며 은행지점 417곳은 업무장애가 발생했다.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추면서 전국 소방서에 1902건의 구조요청이 들어왔다니 가히 ‘전력대란’이라 할 만하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와 한전, 전력거래소의 빗나간 수요 예측과 안이한 대처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부와 한전을 탓하기 전에 우리의 전력 소비 행태에는 문제가 없는지 자문하게 된다. 정전사태를 겪은 다음 날에도 냉방용 전력수요는 오히려 더 늘었기 때문이다. 전력 소비를 자제해 달라는 정부의 절박한 요청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셈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홍역을 앓고 있는 일본은 올여름 원전 가동을 줄이면서 전 국민이 불편을 감수하며 ‘원전 없는 여름 나기’라는 실험을 했다. 공무원들이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근무하는가 하면, 기업은 사무실 근무자를 교대로 반일씩 휴무하도록 하거나 ‘주3일 휴무제’를 실시하기도 했다. 국민도 에어컨과 엘리베이터 사용을 자제하며 더위와 사투를 벌였다. 국민의 희생과 불편을 담보로 한 이 실험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이런 실험을 우리나라에서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번 정전사태를 보면서 새삼 드는 생각이 있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값싸고 편리하게 전기를 사용해 왔나’라는 생각이다. 일각에서는 전기요금을 현실화해 무분별한 전력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보다는 당초의 전력 수급계획에 따라 안정적인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 근본적인 처방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 전력은 설비용량 기준으로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석유를 연료로 하는 화력발전 65%, 원자력발전 25%, 양수발전 5%, 신재생에너지 3% 순이다. 실제 발전량 기준으로는 화력발전이 67%, 원자력발전이 31%이고 양수발전과 신재생에너지는 모두 합쳐 2%가 안 된다. 발전량을 보면 화력발전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설비용량 대비 발전량으로 보면 원자력발전이 높다.
우리나라 원전 평균이용률은 지난해 기준 91.1%로 미국(89.3%)과 중국(86.4%)을 제치고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원전 평균이용률은 원전 설비를 얼마나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하는가에 대한 척도로 우리나라는 2008년 이래 3년 연속 세계 1위다. 특히 원전은 화력발전이나 수력, 신재생에너지에 비해 발전단가가 월등히 낮다.
문제는 원전의 안전성이다. 원자력 안전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학자로서 ‘원전의 안전한 이용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를 강변한다고 국민의 불안심리가 사라질 수는 없다. 다만 언론이 크게 부각하지 않았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7월 10∼22일 원자력 안전규제시스템 검사 결과는 우리 원전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IAEA의 지적, 권고사항이 20개 정도로 프랑스(84개) 중국(81개)은 물론이고 영국(27개) 미국(22개)보다 적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원전 설계, 건설, 운전 기술이 세계에서 제일 안전하다는 것이다.
원전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친환경에너지이기도 하다. 정부는 2024년까지 원전 14기를 추가로 건설해 현재 25%인 원전의 설비 비중을 32%로 늘릴 계획이다. 발전량으로 보면 48%를 책임지게 된다. 앞으로 우리나라 전력소비량은 연평균 1.9% 증가해 2024년 5516억 kWh(2010년 4238억 kWh), 여름철 최대 전력수요는 2024년 9504만 kW(2010년 6989만 kW)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전력 수요에 대응하려면 원전 증설 말고 현실적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전력 수급계획이 답보 상태다. 신울진 1, 2호기 건설 허가, 신고리 2호기 및 신월성 1호기 운영 허가가 지연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정전사태를 보며 안정적 전력 확보를 위해 전력 수급계획에 따라 원전 건설이 차질 없이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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