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세계 경제가 위험 국면에 진입했다”며 국제적 협력을 촉구했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미국 워싱턴에서 “세계경제가 국가부도 위험, 금융시장 불안, 저성장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며 국제 공조(共助)를 다짐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각국 지도자들도 ‘적극적 대처’의 필요성에 한목소리를 냈다.
세계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3년 만에 가장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탈리아의 국가신용등급과 미국 및 유럽 금융기관들의 신용등급이 잇따라 떨어지면서 세계 증시에 폭락 도미노가 이어졌다. 앞으로 세계 경제성장률이 급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높아졌다. 각국 지도자와 국제기구가 이구동성으로 공조를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경제권이 ‘빚의 복수’에 직면해 3년 전과 같은 재정 투입을 통한 경기 부양이 어려워 보인다.
어제 우리 증시에서 코스피는 103포인트(5.7%)나 폭락해 1,700 선이 무너졌다. 연일 급등했던 원화 환율은 당국의 개입으로 하락세로 마감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유럽 금융회사들의 투자자금 회수도 늘었다. 우리 은행들의 재무 상태가 아직은 양호하다고 하지만 위기가 길어지면 안심할 수 없다. 선진국의 경제 침체는 우리 수출에 직격탄을 날릴 것이다. 경제연구소들은 올해와 내년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까지 기다리고 있다. 큰 선거가 있는 해에는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면서 불안 요인이 더 커진다. 1997년 외환위기도 대선의 해만 아니었다면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으로 몰리지 않았을 수 있다. 내년은 경제 정치 안보의 세 분야에서 모두 불안 요인이 잠복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치밀하게 대비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최악의 상황까지 상정하고 만반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은 대외 변수에 취약하고 통화의 국제 위상이 낮은 만큼 14년 전 외환위기 때와 같은 돌발적 외환 부족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이중삼중의 방어벽을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들은 특유의 도전정신으로 위기 극복에 기여하기 바란다.
정치권과 국민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인들이 선거를 의식해 지나치게 정략적 당파적 이해에만 매달린다면 국가와 국민의 앞날을 망칠 수 있다. 잔뜩 거품이 낀 여야 정당들의 인기영합적 복지정책은 국내외 경제 현실에 맞게 전면 재조정돼야 한다. ‘내일의 불행’을 부를 것이 뻔한 정치권의 무분별한 선심 공약에는 ‘그건 아니다’라며 단호하게 거부하는 국민이 더 늘어나야 대한민국 경제가 세계적 위기를 헤쳐 나갈 가능성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