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형삼]1940원짜리 ‘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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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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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말 논산훈련소 식당. 멀건 된장국에 밥을 말아 몇 숟가락 뜨기가 무섭게 조교들이 “동작 봐라” 하면서 뒤통수를 후려쳤다. 2개월 후 카투사 교육을 받으러 간 평택 미군 부대. 사병 식당에 들어서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쾌적한 ‘레스토랑’에서 군인들이 두툼한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우유 주스를 몇 번씩 빼 마셔도 눈치 주지 않았다. 식판을 들고 치킨 배식대에 서니 상병 계급장을 단 금발의 여군 취사병이 이등병인 내게 생글거리며 물었다. “Leg or Breast?” 닭다리를 줄까, 가슴살을 줄까 하는 의미였지만 두 달 만에 처음 보는 여자에게서 신체를 지칭하는 단어를 들으니 얼굴이 붉어졌다.

▷놀라운 건 먹을거리만이 아니었다. 미군은 동계훈련을 나가면 야영지에 더운물이 콸콸 쏟아지는 샤워 전용 천막부터 설치했다. 이렇게 풍족한 군대가 전쟁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까. ‘악’과 ‘깡’은 춥고 배고파야 발휘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답답해 보일 만큼 성실했다. 훈련 때도 꾀를 부리지 않았다. 공식 체력훈련이 없는 주말에도 연병장을 달리며 자기 관리를 했다. ‘입고 먹는 것이 넉넉해야 예절을 안다(衣食足而知禮節)’고 했다. 군인의 ‘예절’은 군기(軍紀)다.

▷전·의경의 한 끼 급식비가 1940원이라고 한다. 군 장병 급식비도 비슷한 수준이다. 서울 공립초등학교의 한 끼 급식비 2457원(관리·인건비를 뺀 식자재비는 2222원)보다 적다. 전·의경의 임무는 ‘치안업무 보조’이지만 격렬한 시위 현장에선 전·의경이 업무의 일선에 서고 직업경찰관이 보조를 맡는다. 일부 전·의경은 경찰관의 구두를 닦고 옷을 다리는 일까지 떠맡는다. 가혹행위도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밤낮을 안 가리는 불법 시위를 막느라 식사도 제때 못하는 이들에게 밥은 든든히 먹여야 한다.

▷지난해 국회는 전·의경 급식비를 현실화하기 위해 98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으나 연말 예산안 처리 와중에 전액 삭감됐다. 지난해 예산 가운데 군 장병 급식비 증액분 50억 원은 군 사고처리 비용 등으로 용도가 변경됐다. 가뜩이나 쥐꼬리만 한 급식비를 줄여 쓰고 돌려 쓸 수는 없다. 수천억 원짜리 첨단 이지스함과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보유한들 기본적인 의식주에서 스트레스를 주는 군대가 강군(强軍)이 될 수 있을까.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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