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의 핵심 고위직이라 국정감사에다 경제위기 대책 마련에 매우 분주하실 겁니다. ‘다이내믹 코리아에 언제 안녕(安寧)한 적이 있었나’라는 농담에라도 위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K 선배. 혹시 기억납니까?
제가 경제현장에서 한창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경제기사를 쓸 당시 꼭 읽어 보라고 건네주신 책 말입니다.
표지에 세계지도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고 ‘경제저격수의 고백(Confessions Of an Economic Hit Man)’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경제저격수란 겉으론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을 돕는 전문가이지만 실제로는 고도의 트레이닝을 거쳐 이권이 걸린 나라의 국고(國庫)를 털어내는 사람들입니다. 흥미진진했습니다. 세계경제의 이면을 폭로하는 내용인 데다 저자가 경제저격수 출신이라 더 생생했습니다.
K 선배.
최근 경제 쪽 인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부쩍 자주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글로벌 재정위기와 관련한 시나리오입니다.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만 그 화살이 정작 아시아권에 쏟아질 거란 얘깁니다. 더욱이 한국이 대표적 타깃이 될 것이라는 게 핵심 줄거리입니다.
이 그럴듯한 얘기는 그리스를 당장 부도내지 않고 시간을 벌어 줄 것이라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리스 국채에 크게 물려 있는 프랑스 독일은 자국 금융기관들이 빠져나올 시간을 1년 정도 확보해준 후 그 기간에 채무조정을 해줄 거란 전망입니다. 이 시기에 미국이 얼마 전 그랬던 것처럼 유럽판 양적완화정책(발권력까지 동원해 돈을 시중에 푸는 정책)을 펴면서 난파 직전의 금융기관들이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시간을 준다는 거죠.
풀려나온 자금은 저평가돼 있는 한국 등 아시아로 소리 없이 유입되는 게 다음 단계입니다. 이 자금이 유입되면 아시아 증시는 실물경제와는 별도로 거품이 만들어집니다. 결국 거품이 먼저 터질 수밖에 없다는 게 시나리오가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체력을 회복한 유럽 금융기관들이 혼란에 빠진 아시아 시장에서 상당한 이익을 챙겨 유유히 빠져나간다는 내용이지요. 요즘 국제경제 흐름을 보면서 그 책이 생각나는 이유입니다.
K 선배.
경제 도사라 불리는 선배께 음모론이 담겨 있는 시나리오를 굳이 말씀드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무리 경제와 금융을 잘 운용해도 목표물을 노리는 저격수가 쏜 총은 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한국증시의 변동성은 세계에서 가장 앞줄입니다.
한국증시의 외국인 비중은 무려 30%가 넘습니다. 이미 외국인들에게 편한 시장이자 놀이터가 된 셈이지요.
경제 저격수는 해외에만 있는 게 아니더군요.
요즘 눈에 밟히는 게 있습니다. 영업 정지된 저축은행의 닫힌 문을 잡고 울부짖는 서민들의 절규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3년 전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도 밤새워 고생하신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위기에는 그 이상으로 빈틈없이 대비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격수의 유탄에 울부짖는 사람들이 더는 없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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