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최종병기 활’을 뒤늦게 관람했다. 700만 명이 봤다는 요란한 선전에 걸맞게 영화는 흥미진진하고 박진감이 넘쳤다. 활 하나로 청나라 정예군을 무찌르고 누이를 구출하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청군에 포위된 주인공을 호랑이가 구출해주는 황당한 설정에 실망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그런데 영화가 끝난 후 오랫동안 뇌리에 남은 건 시종 영화관을 달구었던 화려한 액션이 아니라 마지막 장면의 자막이었다. 청군에서 탈출한 주인공 일행이 압록강 앞에 이르렀을 때 떠오른 자막 한 줄. ‘나라의 포로 송환 노력은 없었다. 극히 일부의 백성이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왔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조선 백성은 5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왕과 신하들은 제 몸 보전하기에 급급했고 백성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많은 백성이 낯선 땅에서 노예생활을 하다 죽어갔다. 몽골 침략과 임진왜란 때 잡혀간 수십만 고려, 조선 백성의 처지가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온 일부 백성’은 병자호란 때만 있었던 게 아니다. 1994년 조창호 소위가 생환한 이래 지금까지 80명의 국군포로가 조국으로 돌아왔다. 목숨을 건 탈출 과정에 정부의 도움은 전혀 없었다. 2005년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국군포로는 모두 1369명. 그중 생존자는 500여 명이다. 납북자는 1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역대 정부는 “국군포로와 납북자는 한 명도 없다”는 북한의 억지에 손을 놓았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국방비는 북한의 5배다. 2009년 국가정보원이 한국국방연구원을 통해 분석한 바로는 한국군의 전력이 북한군보다 10%가량 우세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지난해 연평도 사태 때 드러난 한국군의 허술한 방어망을 생각하면 역대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참모총장들을 청문회에 세우고 싶을 정도다. 수십 년간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쏟아 부었는데 북한 포가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몰라 허둥댔다. 장사정포와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수도권 방어태세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고장과 정비불량으로 무용지물인 고가의 무기가 수두룩하다. 이래서야 국민이 포로로 끌려가는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나.
게다가 우리의 적은 북한만이 아니다. 날로 군사력을 키우고 영토 야욕을 드러내는 중국과 일본은 잠재적 위협 세력이다. 그건 역사가 입증한다. 경제 협력과 국익 분쟁은 별개다. 독도와 이어도를 놓고 일본, 중국과 싸움이 벌어진다면 미국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한미동맹과 별개다. 제주도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논리에 일리가 없지 않지만, 지금 그걸 갖고 우리끼리 아옹다옹할 만큼 국제정세가 한가롭지 않다. 동북아 평화의 균형추 노릇을 하기 위해서라도 주변 강대국들의 군사력을 견제할 정도의 무장이 불가피하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앞두고 지휘체계 개편보다 중요한 건 국방예산과 전비태세에 대한 정밀점검, 그리고 실질적인 전투력 배양이다. 아울러 1999년 연평해전 승장(勝將)인 해군제독이 좌천된 이후 해이해진 장병들의 안보기강을 다잡아야 한다. 한미동맹도 자주를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최종병기는 현빈의 해병대도, 이지스함도, 글로벌호크도 아니다. 군과 국민의 확고한 자주국방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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