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실화 소설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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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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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소설을 영미권에서는 팩션(faction)이라고 한다. 1965년 트루먼 카포트의 ‘냉혈’이 현대 팩션문학의 시조로 꼽힌다. 그는 살인사건에 대한 신문 기사를 보고 많은 관련자들을 취재해 이 소설을 완성했다. 1970년대 후반 미국의 흑인작가 알렉스 헤일리가 6대에 걸친 자신의 가계를 추적해 완성한 ‘뿌리’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졌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TV 시리즈 ‘뿌리’를 보고 눈물을 흘린 시청자도 많았다. ‘밤의 군대들’ ‘사형집행인의 노래’를 쓴 노먼 메일러도 대표적인 팩션 작가다.

▷최근 세간에 충격을 던진 영화 ‘도가니’의 원작이 바로 2009년 공지영이 낸 동명 소설이다. 한국 문학사에서 보기 드물게 성공한 실화소설로 2000년부터 4년 동안 한 청각장애학교에서 일어난 일련의 성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에 앞서 공지영은 사형제도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많은 사형수와 인터뷰한 뒤 2004년에 완성했다. ‘우리들의…’는 실화소설로 보기는 어렵지만 그때부터 제대로 된 실화소설을 쓸 준비를 착실히 한 것으로 보인다.

▷팩션은 문학이면서 저널리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공지영은 소설가인 동시에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셈이다. 그것도 기존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못한 ‘미시적 권력관계에서의 비리’를 폭로한 훌륭한 저널리스트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같은 소설과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체험기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작가가 중량감 있는 사회비판 작가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공지영의 정치의식은 공정하지 못하다. 공지영은 한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첫 재판에서는 법정 구속으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검사는 3년을 구형했는데 죄질이 워낙 나빠 5년이 된 거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다. 얼마 가지 않아 촛불시위가 일어났는데 그 사이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이 난 거다. 시위에 가려 기사 한 줄 나지 못했던 거다”고 말했다. 공지영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고 있지만 1심이나 2심이나 사법부는 이용훈 사법부로 동일하다. 재판받은 사건이 일어난 것도 인권을 외치던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 걸친 2000∼2004년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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