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이 터키에서 발굴한 트로이 유물은 처음 독일로 갔다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진주한 소련군이 다시 러시아로 옮겼습니다. 이 유물은 어느 나라에 있는 것이 옳을까요?” (조한숙 서울 풍문여고 교사)
일본 사이타마(埼玉) 현 사이타마 시 슈쿠도쿠요노(淑德與野) 고등학교. 이곳에서 26∼28일 서울 풍문여고 교사들이 국가 간 문화재 반환의 의미를 짚는 특별 수업을 진행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지원하는 ‘역사교사 해외교환 방문수업’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달 슈쿠도쿠요노 중고교 교사 두 사람이 풍문여고를 찾아 문화재 반환을 주제로 수업했던 데 대한 답방 형식의 수업이었다.
이날 현장에서 본 일본 여고생들의 반응은 오랜 이웃인 한국과 일본이 다양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러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은 널리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일본이 한국에서 약탈해 간 문화재를 많이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일본도 다른 나라에 빼앗긴 문화재가 있다는 사실을 한국 교사에게서 듣고서 놀라기도 했다. 구도 아야노(工藤綾乃) 양은 “한 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문서나 문화재를 다른 나라가 가졌다는 건 굉장히 큰 실례”라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사실을 안다는 것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초다. 수업에서 두 교사는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1860년 중국 베이징(北京)에 침입해 청나라 황제의 별장 위안밍위안(圓明園)에서 가져갔던 12지신상 일부가 2009년 프랑스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다가 중국의 반발로 경매가 무산됐던 일이나, 슐리만이 발굴한 장신구 등 트로이 유물이 발굴지인 터키를 떠나 독일로, 러시아로 떠돌았던 일 등 제3국의 사례를 차분히 설명했다. 학생이 ‘이해 당사국 국민’으로서만 문제를 바라보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많은 학생이 “문화재는 한 나라의 문화와 정신이 집약된 물건이므로 원래 나라에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이 같은 학생들의 반응은 물론 국제정치나 외교의 복잡한 실상을 적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한일 양국이 어떻게 묵은 앙금을 털고 미래로 나아갈지에 대해 그 ‘순수한 답’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학자와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조용히 미래 세대를 가르치고 교류를 확대하는 활동이 이미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것은 결국 정치인들의 결정보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식이기에, 미래 세대의 의식과 태도를 바꾸어가는 이 같은 활동의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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