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에 입학한 둘째의 손에 베스트셀러인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들려 있다. 녀석은 프리미어리그 축구경기를 보느라 TV에 푹 빠져 있다. 녀석 옆에 놓인 ‘아프니까…’를 들여다봤다. 청춘과 늘 같이하면서 그들의 삶과 생각과 환희와 아픔을 관찰하고 함께한 저자가 그들의 좌절과 희망을 말하는 책이었다.
문득 ‘중년의 아픔’도 ‘청춘의 아픔’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욱 힘겹고 서러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기를 지나오지 않은 중년은 없다. 청춘이야 실패할 수도 있는 특권이 있다. 그러나 중장년에게 실패는 특권이 아니다. 아픔을 아픔이라고 말하지도 못하는 시간이다. 청년의 아픔이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좌절이라면 중장년의 아픔은 현실적 실제적인 아픔이다. 중장년의 아픔은 보호막도 없다. 무자비하게 다가오는 세월 앞에 속수무책으로 맞닥뜨리는 것이 중장년의 아픔이다. 아니 어쩌면 아파할 시간도 여유도 없는 것이 중장년의 아픔일 게다. 호소할 대상도 없이 그저 맨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것이 중장년의 아픔이다. 경제문제, 자녀문제, 건강문제, 부부문제, 직장문제…. 어느 것 하나 절박하지 않은 게 없다. 이런 절박함 속에서도 세월은 속절없이 흐른다. 한두 잔 술에 풀고 한두 번 헛기침으로 위장하는 중장년의 고독과 소외감은 안으로 삭이는 것 말고는 별 해법도 없다. 생활고에 밀리고 세월의 당김 속에서 중장년은 자기를 잃고 세월에 떠밀려간다.
삶은 서정주 시인이 ‘국화 옆에서’에서 노래한 것처럼 내적 성숙으로 영글어가는 것만은 아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잠 못 들던 밤이 지났어도 인생이 결실을 맺고 꽃을 피웠다면 지난날의 불면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피지 못하고 열매 맺지 못한 수많은 경험들은 또 어찌하랴.
중장년은 삶의 열매를 영글게 하는 시기여야 한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서 허무를 숙명처럼 살 수는 없다. 누구나 삶은 고통이면서도 선물이다. 존재에 대한 경외감과 감사함이 중장년의 과제이리라. 청춘의 생기도, 여름날의 열정도, 기실 가을날의 열매를 위한 몸부림 아닌가. 이 가을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이제는 욕심과 집착과 아픔을 승화시켜 결실을 맺어야 하는 것이 중장년의 과제이자 특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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