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설 범(汎)야권 통합후보 경선에서 박영선 민주당 후보가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 변호사에게 패배한 뒤 민주당에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어제 “60년 전통의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못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며 대표직을 전격 사퇴했다. 제1야당 대표로서 안철수 바람을 업은 정치 초년병에게 맥없이 무너진 데 대한 자괴감이 컸을 것이다.
박원순 후보는 기존 정당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염증을 파고들었다. 3일 야권 단일후보 결정을 위한 현장투표에서 민주당은 조직력을 통한 대반전을 노렸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결집한 젊은층의 열기를 누르지 못했다. 싸움질로 지새우다가 집단이기주의를 위해서는 찰떡궁합을 맞추는 기존 정당 정치에 대해 박 후보로 대변되는 신진 세력이 일격을 가했다는 시각도 있다. 박 후보는 후보등록 마감일인 7일까지 민주당에 입당할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박 후보가 최종적으로 민주당 입당을 거부한다면 민주당의 무력감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지난해 6월 경기도지사 선거, 올해 4월 경남 김해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그리고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자당(自黨) 후보를 내지 못하는 것은 가볍게 볼 사태가 아니다. 제1야당으로서 자책(自責)은 당연하다.
대의(代議)민주주의의 핵심적 수단인 정당 정치를 위기에 빠뜨린 일차적인 책임은 기성 정치권에 있다. 정치권은 민심과 다양한 소통을 하는 데 실패했다. 명망과 역량을 갖춘 인재들을 적극 영입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정치와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주무대가 돼야 할 국회는 서로 네 탓만 하는 정쟁(政爭)의 마당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여당인 한나라당도 정당 정치의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때 주류였던 친이(親李)세력은 제 살길을 찾느라 바쁘고, 주류로 떠오른 친박(親朴) 내부는 벌써 정권을 잡기라도 한 듯 주도권 다툼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야 정치권이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새로운 대안에 눈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 있다. 기존 정치권은 땜질식 처방으로는 잠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민심의 물줄기를 되돌릴 수 없다. 근본적 쇄신 노력이 없다면 안철수-박원순 바람이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거세질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