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우주정거장을 건설한다는 원대한 그림 아래 중국은 9월 29일 저녁에 작은 우주실험실인 톈궁(天宮) 1호를 발사했다. ‘우주에는 국경선이 없다’며 우주라는 새로운 영토를 선점하려는 중국이 ‘우주 굴기(宇宙굴起)’를 선언한 상징적 사건이다.
이날은 마오쩌둥(毛澤東)이 톈안먼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정권 수립을 선포한 62번째 국경절(10월 1일)을 코앞에 둔 시점이다. 바로 지금, 국경절 연휴 일주일 동안 13억 중국인은 손오공이 소란을 피웠다는 톈궁에 대해 온갖 호기심과 자랑거리를 늘어놓을 것이다.
우리는 개천절이나 광복절을 앞두고 우주발사체인 나로호를 쏠 배짱이 있을까? 태극기도 달지 않고 TV의 기념식도 외면하며 그 기념일의 의미마저 희미해지는 요즘, 특정 국경일에 나로호의 발사를 맞추고 싶은 호사가(好事家)의 기대는 뜬금없는 이야기처럼 남세스럽다. 나로호 발사는 2009년 8월과 2010년 6월, 두 번 모두 실패했다. 내년 여름쯤 쏠 것이라는 소문만 무성한 3번째 발사는 정말 준비를 하기는 하는 건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나로가 미로에 빠진 걸까?
공교롭게도 두 번의 실패는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재임기간에 벌어졌다. 내년에 발사했다가 실패하면 이명박 정부는 정말 우주와 인연이 없는 셈이다. 따라서 세 번째 시도를 슬그머니 2013년으로 연기시키려는 음모(?)까지 나돌고 있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나로호 발사 자체에 대한 위험 부담이 누적된 데다 만약 실패하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야권은 나로호 발사에 별 관심도 없지만, 만약 성공하면 집권하는 데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을 걱정한다. 성공해도 문제고 실패해도 문제다. 여야 할 것 없이 나로호 발사를 수천억 원짜리 ‘우주 쇼’로 여기는 것이다.
두 번째 실패 이후 그 원인과 책임을 놓고 4차례에 걸쳐 한-러 공동조사위원회(FRB)를 운영하고, 한-러 민간전문가조사단을 구성하고, 한-러 공동조사단(FIG) 회의도 열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16개월째 지루하게 티격태격하는 양쪽의 태도를 볼 때 3차 발사에 대한 의지는 사라지고 의무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발사가 성공할 수 있을까?
북한을 경유하는 가스관 건설 사업에 대해 러시아와 신속하고 당당하게 협상하는 정부를 보며, 왜 나로호 발사 사업에 대해서는 신속하지도 당당하지도 않은지 궁금하다. 나로가 미로에 빠진 것은 과학자나 행정부의 무능이 아니라 정치권의 무관심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지 않는가?
톈궁 1호를 발사하던 날,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비롯한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 모두 베이징(北京)과 주취안(酒泉)의 우주통제센터에서 발사 과정을 지켜봤다. 그들은 53년 전 “미국과 소련이 한다면 우리도 한다”며 우주 개발을 선언한 마오쩌둥을 떠올렸을 것이다.
나로호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렁차게 날아오르는 바로 그날, 우리에게 떠오르는 얼굴은 과연 누구일까? 내년 광복절이나 개천절 즈음에 멋지게 날아오른 나로호를 보며 단군왕검이나 동명성왕 또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갑게 떠오르는 얼굴은 누구일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