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홍권희]애플의 특허전쟁은 무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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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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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권희 논설위원
홍권희 논설위원
승승장구하던 애플이 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5일 새벽(한국 시간) 아이폰5가 공개되는 줄 알고 지켜보던 세계 소비자들에게 “기다리시라(You'll have to wait)”면서 아이폰4S만 내보였다. 애플은 발표 직전까지 ‘아이폰5 곧 공개’라는 세계 언론의 오보 섞인 전망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팬들의 기대감을 부풀렸다. 밤잠을 설쳐가며 트위터 등으로 현장 상황을 전해 듣던 한국 애플 팬들의 실망이 컸을 것이다.

탄생 직후 소송대상 된 아이폰4S

아이폰4S는 카메라와 음성명령 기능 등은 개선됐지만 삼성전자의 주특기인 종래의 기술을 쓴 것이어서 삼성전자와의 특허전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삼성전자는 아이폰4S의 통신 특허 침해에 대해 5일(현지 시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애플이 만일 국내에서 최근 선보인 롱텀에볼루션(LTE) 방식을 채용했더라도 이 분야의 특허왕인 LG전자의 특허를 피해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특허전쟁은 4월 애플이 일으켰지만 삼성전자의 맞대응으로 애플이 불리해졌다. 애플은 삼성전자가 ‘맹목적으로(slavishly) 베껴댔다’고 주장했다가 9월 네덜란드 법정에서는 삼성전자를 ‘램버스 같은 악덕기업’이라고 비난했다. 램버스란 반도체의 핵심 특허로 반도체 대기업 여럿을 괴롭힌 미국 회사다. 애플이 ‘삼성전자가 특허로 우리를 괴롭힌다’고 욕할 생각이었다면 소송에 앞서 삼성전자 측과 상호 침해를 보상하거나 특허를 공동 사용하는 협상을 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애플은 네덜란드 법정에서 처음엔 “삼성전자의 칩 특허를 몰랐다”고 했다가 “협상을 했더니 삼성이 과도한 로열티를 요구했다”고 털어놓았다. 애플이 허락 없이 삼성전자의 특허를 사용했음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이달 14일 네덜란드 법정의 판결에 애플이 웃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여러 경쟁자를 물리친 애플로서는 끝까지 따라붙어 위협하는 삼성전자가 미웠겠지만 특허전쟁을 건 것은 무리였다. 모바일 기술 특허에서 세계 33위가 챔피언을 잘못 건드렸다. 퇴임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요즘 삼성전자와 협상을 벌이고 있어 ‘휴전’ 소식이 언제 날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베끼기 대장’이란 누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한동안 소송에 전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마트폰 특허싸움은 여러 건이다. 경쟁자에게 특허 사용료를 물려 제품 가격을 올리게 만들려는 전략이 소송과 맞소송을 낳았다. 애플에 맞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개방한 구글은 ‘자바’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오라클로부터 소송을 당해 고전하고 있다. 오라클의 보상 요구액은 61억 달러에서 최근 20억 달러로 낮아졌지만 앙숙인 양사 CEO는 최근에도 법정을 들락거려야 했다.

친환경차 등도 특허 무기화 바람

특허전쟁은 ‘기술에 공짜는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일깨워준다. 스마트폰에 이어 다음 특허전쟁터로 친환경자동차 부문이 꼽힌다. 조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자동차가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만들 때 기술에서 앞선 일본 도요타자동차 등의 특허를 피해가느라 고생이 많았다”면서 “시장 진출은 천천히 하더라도 기술은 선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친환경차 특허의 3분의 2를 일본 업체가 갖고 있어 현대차의 대비가 요구된다.

박찬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만드는 데 5만여 개의 특허가 필요해 한 기업이 자체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핵심 특허를 보유하지 못하면 산업 주도권 다툼에 낄 수 없다”고 말했다. 특허는 부산물이 아니라 라이선스를 주거나 재판매를 하는 등 수익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익자산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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