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병석]인터넷에 나도는 엉터리 피임 지식

  • 동아닷컴
  • 입력 2011년 10월 7일 03시 00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1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스마트폰 시장이 성장해 올해 말까지 가입자가 2000만 명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디지털 선진국.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정보는 5분 안에 찾아볼 수 있는 대한민국이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인터넷 강국에 걸맞게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피임 지식 역시 인터넷을 통해 얻는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돼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 9개국을 대상으로 한 피임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20∼35세의 젊은 성인들은 조사 국가 중 가장 높은 65%가 인터넷을 통해 피임에 관한 정보를 얻는다고 응답했다. 물론 피임에 대한 지식을 실생활에서 가까이 하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창구를 통해 자주 접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인터넷에 난무하는 피임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갖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 과연 얼마나 유의미한 정보를 올바르게 얻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의료진이 제공하는 의학적인 정보나 뉴스 기사를 통해 얻는 정보보다 블로그나 카페, 또래들이 남긴 답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잘못된 피임 정보를 얻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잘못 습득한 피임 지식이나 피임법에 대한 오해와 속설들이 또 다른 인터넷 콘텐츠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쉬운 예로 먹는 피임약의 경우 피임효과가 가장 높고 안전한 피임법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상에서는 불임을 야기한다거나 암을 유발하는 등 부작용이 높은 약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이처럼 잘못된 정보가 파급력이 높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우리나라의 먹는 피임약 복용률은 세계 최저 수준인 2.5%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주기법과 질외 사정 같이 피임 실패율이 높은 자연 피임법을 빈번하게 사용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임신 중절을 경험한 여성들이 시술 전에 가장 많이 사용한 피임법으로 월경주기법이나 질외 사정 같은 자연 피임 방법이 67%로 가장 많았다는 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인터넷 인프라가 세계 1위지만 그로 인해 올바른 피임법에 대한 인식은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한 셈이다.

심지어 청소년의 경우 인터넷을 통해 피임 지식을 얻고자 하더라도 정보에 대한 접근마저 차단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방문자를 자랑하는 한 포털 사이트에서 콘돔을 검색해 보면 유해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성인 인증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나타난다. 콘돔에 대한 검색이 자유로운 해외 포털 사이트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청소년들을 음란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마련된 조치로 이해하기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성(性)이나 피임에 대한 이슈를 원천봉쇄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실제로 콘돔이라는 단어에 대한 검색을 차단한다고 해서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음란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되거나 혼전 순결을 지키는 것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올바른 피임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병석 대한피임생식보건학회 회장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장
이병석 대한피임생식보건학회 회장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장
9월 26일은 세계 피임의 날이었다. 중요한 것은 피임 정보에 대한 무조건적인 차단이 아니라 청소년과 젊은 성인 남녀들이 성에 갖는 관심을 존중하면서 올바른 정보를 얻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인터넷 속 잘못된 오해와 속설들 대신 의료진이나 성 전문가가 권하는 가장 안전한 피임법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인터넷 강국답게 많은 대한민국의 청소년과 성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확한 피임 정보를 접하고 또 실생활에서 가까이 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병석 대한피임생식보건학회 회장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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