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주영]대규모 정전사태 재발 막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7일 03시 00분


김주영 전국전력노동조합 위원장
김주영 전국전력노동조합 위원장
9월 15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정전사태가 전국에서 일어났다. 국민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깜깜한 엘리베이터 속에서, 멈춘 공장 기계와 교통신호등 앞에서 애를 먹어야 했다.

이후 정전의 원인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전력산업 구조개편으로 생겨난 이름조차 생소한 전력거래소란 기관에 직접 책임이 있고 지식경제부도 감독 책임이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국민에게서 한전은 도대체 뭐하는 기관이냐는 질책을 받았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 왔던 한전 직원으로서 억울한 심정이지만 정전사태의 원인이나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든, 국민에 대한 ‘값싸고 질 좋은 전기의 안정적 공급’에 무한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에서 믿고 아껴주신 국민 앞에 면목이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다만, 앞으로 이와 같은 사태를 근본적으로 방지하려면 다음과 같은 대책이 시급하다는 제언을 전력노동자로서 드리고 싶다.

첫째, 대다수 국민이 기대하고 있는 ‘한전=전력 공급의 최종 책임자’ 역할을 다하기 위해선 한전에 이에 상응하는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2001년 이전에는 일부 민간발전을 제외하고는 한전이 발전소를 비롯한 대부분 전력설비의 건설과 소유, 운영을 담당했고 고객과도 공급계약을 직접 했다. 그러나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전력거래소로 수급 계획 및 발전소의 운전과 정지를 비롯한 전력계통의 운영권이 넘어갔다. 사실상 한전은 몸만 있지 책임을 질 만한 모든 권한을 넘긴 상태다.

그러나 권한을 넘겨받은 거래소는 지경부 퇴직 관료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준정부기관이기 때문에 국민이 내는 전기요금이나 서비스의 중요성을 한전 직원들만큼 절실하게 느끼지 못한다. 이번 사태만 해도 거래소의 수요예측 오차로 오전부터 비상상황이 예상됐지만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정전사태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전문가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조차 계통 운영권한을 한전에 통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둘째, 왜곡된 전기요금 구조의 정상화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국제 연료가격이 폭등하면서 현재의 전기요금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비정상적 구조다. 또 정부가 책임져야 할 수십 가지 정책부담금도 전기요금에 전가돼 있다. 이 때문에 전기를 팔수록 적자가 커지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한전은 전력 공급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도 보전받지 못해 빚을 내 필요 설비의 투자나 유지 보수를 하고 있다. 그러나 부채는 결국 현재의 부담을 미래 세대로 이월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비정상적인 전기요금 구조를 방치함으로써 예측 대비 초과수요를 지속적으로 조장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제 탁상공론식 분할 민영화 이론이나 시장 타령을 중단하고, 힘없는 실무자 처벌 같은 희생양을 내세워 모면하려 하지 말고 앞에서 예시한 근본적인 대책들을 실천에 옮겨야 할 때다.

아직도 정부의 눈치를 보는 일부 관변학자가 한전과 전력거래소 계통 운영 기능의 통합에 대해 시기상조론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번 전력대란도 요금을 시장 기능에 맡겼으면 공급 부족으로 전기요금이 급등해 소비자들이 스스로 스위치를 내렸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공급이 부족해 요금이 폭등한 미국 캘리포니아나, 캐나다 온타리오에서는 소비자들이 이를 감당할 수 없었을뿐더러 정치적으로도 수용할 수 없었다. 불과 며칠 전 칠레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사태도 구조 개편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김주영 전국전력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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