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에는 대개 피해자가 고소를 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親告罪)를 적용한다. 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지만 가해자가 고소 취하나 감형을 유도하는 방편으로 악용해 논란을 빚었다. 성폭력특례법 6조는 신체·정신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를 이용해 간음·추행한 자를 형법상 강간·강제추행에 준해 처벌한다. 그러나 법원이 ‘항거불능’을 심리적·물리적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로 너무 좁게 해석하면서 자기방어 능력이 부족한 장애인 대상 성범죄자가 무죄 판결을 받는 일이 많았다.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라는 법의 취지가 무색하다.
▷정부가 어제 ‘장애인 대상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광주 인화학교 교직원들의 청각장애아 성폭행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자 정부가 서둘러 대책을 내놓았다. 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를 폐지하고 항거불능을 요하지 않는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을 추가해 범죄의 인정 범위를 확대했다. 장애인 강간죄의 법정형도 3년 이상에서 5년 이상으로 강화했다. 법 제정의 경위에 비춰 ‘도가니 법’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다.
▷2007년 10세 혜진이와 8세 예슬이 유괴·살해사건이 벌어지자 법무부는 아동 성폭행 살해범을 사형이나 무기징역으로 엄벌하는 일명 ‘혜진·예슬이법’을 제안했다. 2009년 8세 나영이를 잔인하게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은 청소년 성폭행사건의 친고죄를 없애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2월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김길태 사건 이후엔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를 소급 적용해 확대하는 법이 시행됐고,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 법안도 통과됐다. 나영이의 부친은 최근 아동 대상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충격파가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새로운 법을 급조하고 땜질 처방에 급급하는 건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도가니’의 성폭행 범죄자들이 법망(法網)을 피해간 것은 법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사적 권력을 가진 가해자들에게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엄격한 법 적용과 장기적 안목의 보완책이 필요하다. 성범죄자에 대한 꾸준한 치료와 관찰로 재범률을 떨어뜨리는 노력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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