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나라당, 정치질서 대변화 제대로 읽고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8일 03시 00분


60년 전통의 제1 야당인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못 내고 시민운동가 출신의 박원순 후보를 돕는 조력자의 신세로 전락했다. 이제 모든 좌파 성향 야당과 사회단체들이 ‘안철수 돌풍’에 올라탄 박 후보를 중심으로 총결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야권의 거대한 재편을 예고하는 전주곡 같다. 각 정당과 정파가 ‘복지 동맹’이라는 깃발 아래 모이고 그 틀 안에서 각자 다른 이념의 스펙트럼을 갖고 경쟁하자는 ‘빅 텐트론(論)’이 제시되는가 하면, 아예 야권 단일정당 구성을 추진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범좌파 세력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꺾는 것이 당면 최대 목표다. 정당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정치질서나 정당정치가 갖는 가치는 이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참신한 인물을 내세우고, 사회적 양극화를 구실로 민심을 파고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활용하면 승산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막후에서는 이처럼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한 거대한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그 움직임이 가시화하는 시기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변화의 대세는 이미 형성됐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마치 딴 세상에 살고 있는 듯이 태평스럽다.

박근혜 전 대표가 4년 만에 처음으로 선거 지원에 나서기로 했고 앙숙 같던 친이, 친박계가 나경원 후보 지원을 위해 서로 손을 맞잡긴 했지만, 한나라당 전체로는 근본적인 위기의식이 없어 보인다. 이 정도 변화는 야권이 추구하고 있는 대통합의 대의와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내부 단합이 유지될지, 한나라당에 실망해 거리를 두고 있는 재야 보수세력을 온전히 품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위기는 실제 상황이다. 박 전 대표가 “지금 상황은 한나라당뿐 아니라 우리 정치 전체의 위기”라고 말한 것은 정확한 진단이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도 숱한 위기를 겪으며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했다. 어떤 정당이건 외부의 변화와 국민의 바람에 주도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한나라당은 보수세력의 중심에 서서, 범야권에 대응해 거대한 정치질서의 변화를 선도할 만큼 자기혁신을 해야만 전례 없는 정치의 위기이자 여당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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