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강대임]공생발전 위한 ‘따뜻한 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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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2일 03시 00분


강대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휴먼인지환경사업본부장
강대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휴먼인지환경사업본부장
한 시대를 변화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인류는 과학기술을 통해 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를 크게 변화시켜 왔다. X선과 페니실린, 이중나선 등 역사상 위대한 발견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새로운 가능성도 가져왔다.

21세기 들어 과학기술은 첨단산업과 접목되면서 더 큰 파급력을 지니게 됐고, 경제 발전을 위한 도구로도 활용됐다. 과학기술을 유용하게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불평등이 생기면서 여러 분야에 걸쳐 과학기술 소외계층이 생겨났다.

199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과학회의’가 채택한 선언문은 과학과 공학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과학적 지식의 이용은 항상 인류에 대한 빈곤의 감소를 포함한 복지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차가운 이성으로만 여겨졌던 과학기술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해석한 것으로, 이를 ‘따뜻한 과학기술’이라고 칭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따뜻한 과학기술은 좁은 의미로는 수익성이 적다는 이유로 개발하지 않은 과학기술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매일 6000명 넘게 사망하는 아프리카 등지의 사람을 위해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휴대용 정수기를 개발하거나 장애인과 노약자의 불편을 줄여주기 위해 호흡으로 TV 채널을 조정하거나 혀로 사물을 볼 수 있게 하는 시각장애인용 브레인포트 등이 그것이다. 이 밖에 지식 격차를 줄이는 과학지식 기부 등 따뜻한 과학기술 분야는 무척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과학기술을 통해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공학, 이학, 의학, 심리학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시각장애인이 사물을 보고 상대방의 감정도 느낄 수 있게 해 다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용 ‘아이헬퍼(Eye Helper)’를 개발하고 있다. 또 청각장애인들이 바람이나 파도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나 자동차 경적 같은 위험한 소리를 촉각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청각장애인용 ‘이어헬퍼(Ear Helper)’를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 장애인과 노약자들이 이런 첨단 기능을 지닌 도우미를 사용할 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업자 측면에서는 높은 생산원가나 유통비용으로 인해 장기적인 수익성이 떨어지는 게 한 이유다. 이 같은 안내 도우미는 초음파를 이용하기 때문에 화장실과 매표소 같은 주요 공공시설마다 초음파 송신장치를 부착하는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고 관련 기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장애인과 소외계층을 위해 꼭 필요한 과학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사회 정책적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거나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진다면 실생활에 적용되지 못하고 실험실 속의 과학기술로 남게 된다. 우리 정부의 사회 정책적 뒷받침이 아직은 미흡한 편이다.

삶을 풍요롭고 건강하고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따뜻한 과학기술을 개발하려면 과학자의 고민과 사회 정책적 인프라 그리고 국민의 관심이라는 3박자를 모두 갖춰야 한다. 과학정책이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계층, 세대, 지역 불균형 해소’라는 의견이 64.8%로 가장 많았다. 사회적 책임 구현에 과학기술의 역할이 좀 더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기술계와 산업계 그리고 정부가 따뜻한 과학기술 개발과 보급에 적극 투자할 수 있도록 국민이 더 많은 관심과 힘을 실어 주었으면 한다. 이제 과학기술은 부가가치 창출을 넘어 따뜻한 과학기술로 패러다임을 바꿀 시기가 됐다. 따뜻한 과학기술로 공생발전 사회가 구현되기를 기원한다.

강대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휴먼인지환경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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