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이익 챙기기, 손실 떠넘기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3일 20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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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는 은행 등 ‘금융의 타락’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미국 금융회사들은 파생상품 거품을 만들고 거액의 연봉을 챙겼지만 경영이 어려워지자 정부에 손을 내밀었다. 미국 정부는 금융 산업 붕괴에 따른 후유증을 우려해 대규모 공적자금을 지원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익은 임직원이 챙기고 손실은 세금으로 떠넘긴 은행들의 행태를 ‘이익의 사유화(私有化), 손실의 사회화’라고 비판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뉴욕대 교수도 2009년 ‘블랙 스완(검은 백조)의 출현에 대비하는 10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는 모두 허용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검은 백조’란 글로벌 금융위기나 2001년 9·11테러처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발생하면 충격이 큰 사건을 말한다. ‘취약한 기업은 일찌감치, 규모가 작을 때 사라져야 한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사이비 금융전문가의 조언에 의존하지 말라’ 같은 제안도 눈길을 끌었다.

▷전국금융노조가 8% 임금 인상, 수백만 원의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면서 ‘총파업 불사’를 들먹이고 있다. 일부 은행 경영진은 주주 배당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은행들이 올해 많은 이익을 내면서 나타나는 움직임들이다. 시중은행들은 2009년 3월 약 4조 원의 자본확충 펀드를 정부에서 지원받아 아직 67%를 갚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 분야에 168조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과거까지 떠올리면 ‘이익 챙기기와 손실 떠넘기기’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어제 “정당한 성과와 보수는 반대하지 않지만 우리 금융회사들은 공적자금으로 살아난 곳인 만큼 어떤 행동 양식을 가질지를 스스로 대답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금융인들의 과도한 탐욕과 도덕적 해이를 엄격히 감독하는 것은 정부의 필수적 책무라는 시각이 힘을 얻는 시대다. 은행 종사자들은 이익이 늘었다고 봉급과 배당부터 챙기는 모습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야 한다. 최근 미국의 반(反)월가 시위도 금융위기 이후 공적자금으로 살아난 은행들이 다시 ‘돈 잔치’를 벌인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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