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야신(野神)과 헐크(Hulk)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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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나가수(나는 가수다)’와 ‘슈스케(슈퍼스타K)’가 인기다. 즉석에서 순위와 당락이 결정되는 짜릿함 덕분이다. 대중음악도 예술인데 순위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너무 점잖은 말씀이다. 나가수에선 실력파 중견 가수들이 탈락의 수모를 앞에 놓고 생존 경쟁을 벌인다. 대중 앞에 발가벗고 선 진짜 프로들이다.

승부의 세계는 마약과 비슷하다. 한번 빠지면 그 마력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스포츠는 천진난만해 보이지만 모든 게 승부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승부 아닌 게 없다. 야구 심판은 한 경기에서 약 300개의 판정을 내린다. 두 팀이 최소 그만큼의 승부를 주고받는다는 얘기다. 따라서 스포츠는 1(승)과 0(패)의 거대한 조합으로 비치기도 한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월드시리즈를, 넓게는 포스트시즌을 ‘가을의 전설(Fall Classic·폴 클래식)’이라 부른다. 1과 0의 수많은 조합 가운데 맨 앞자리에는 항상 팬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승부와 드라마가 탄생한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말이다.

정규시즌 680만 관중을 돌파한 국내 프로야구의 포스트시즌이 한창이다. 올해 포스트시즌의 첫 번째 화두는 ‘야신’ 김성근과 ‘헐크’ 이만수의 승부다. SK는 시즌 중인 8월 중순 김성근을 해임하고 이만수를 대행으로 앉혔다. 둘은 감독과 코치로 지난 4년간 3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이뤘다. 하지만 스타일은 판이하다. 김성근이 컴퓨터라면, 이만수는 오락기다. 너무 단순화한 느낌이 있지만 많은 사람의 평가가 그렇다는 얘기다. 이만수는 김성근 사단이 아니다. 김성근이 해임되자 ‘감독 잡아먹은 코치’라는 비난을 받았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팬들은 SK 구단을 맹렬히 비난했다. 선수들조차도 한때 태업을 하며 승률을 깎아먹었다.

이런 와중에 이만수가 이끈 SK는 김성근이 그만둘 때의 순위인 정규 시즌 3위를 지켰다. 그리고 KIA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1패 후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KIA보다 약체라는 평가를 받았기에 값진 승리였다. 이만수의 SK는 합격점을 받았다. 팬들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김성근 때와는 전혀 다른 ‘믿음의 야구’란 찬사까지 나왔다. 이만수가 대행 꼬리표를 뗄 것이란 말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대행 취임 당시 일부 선수로부터 외면을 받았던 그였다.

이제 이만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상위 두 팀인 삼성과 롯데의 류중일, 양승호 감독은 신인 사령탑이다. 남은 포스트시즌은 초짜 시리즈다. 양승호는 제리 로이스터가 지난 3년간 연속으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기에 SK를 이기지 못하면 정규 시즌 2위를 한 지도력이 빛을 잃게 된다. 류중일은 지난해 선동열이 준우승을 하고도 중도 해임됐기에 우승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삼성과 롯데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난다면 지난달 장효조 최동원의 잇따른 사망과 맞물린 최고의 레전드 시리즈가 된다. 롯데 최동원이 4승을 혼자 거둔 1984년 이후 27년 만의 한국시리즈 맞대결이다. 삼성과 SK가 맞붙으면 삼성에서 버림받은 이만수의 복수 시리즈가 된다. SK가 내친김에 우승까지 한다면 이만수는 물론이고 SK는 김성근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물론 어떤 이는 ‘김성근의 아이들’이 만든 신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올해도 눈을 뗄 수 없는 흥미진진한 승부가 예고되는 폴 클래식. 그래서 너무 행복하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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