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미국 뉴욕 맨해튼 주코티 공원에 왕년의 유명한 기업사냥꾼 애셔 에덜먼이 깜짝 등장해 지지연설을 했다. 에덜먼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87년 영화 ‘월 스트리트’의 주인공 고든 게코의 실제 모델로 꼽혔던 인물이다. 에덜먼은 “은행들의 탐욕이 지금 겪고 있는 끔찍한 경제상황의 원인”이라고 현재의 금융시스템을 비판했다. 자신이 ‘활약’하던 시절에는 최소한 납세자 세금이 금융권에 투입되지는 않았음도 지적했다.
종착지 알 수 없는 지구적 시위사태
영화 ‘월 스트리트’는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월가 금융계의 추악한 뒷모습을 폭로했다. 탐욕스러운 기업사냥꾼 에덜먼 역할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는 “탐욕은 선이다(Greedy is good)”라는 월가의 생존법칙을 체현하는 인물을 연기한다. 최근 시위를 보며 참으로 통찰력 있는 명대사였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 후속편 ‘월 스트리트-머니 네버 슬립스(Money never sleeps·돈은 잠들지 않는다)’가 만들어졌다.
시위대가 타깃으로 삼은 월가는 ‘상위 1%’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 구조와 정글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중산층의 몰락,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실업자의 양산, 무너지는 아메리칸 드림이 그 배경에 자리 잡고 있다. 월가 임원들의 거액 보너스 잔치는 부의 편중뿐 아니라 미국사회를 떠받치던 공정의 가치관이 실종되고 신뢰가 증발했음을 보여줬다. “미국사회가 더는 정의롭지 않다”는 믿음이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깊이 박히고 있다.
미국사회의 양극화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심각하다. 미국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소득에 허덕이는 빈곤층 비율은 지난해 15.1%로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빈부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보면 미국은 0.47(1에 가까울수록 빈부격차가 크다)로 우리나라(0.31)보다 훨씬 심하다. 1965년만 해도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소득은 평사원 소득의 평균 5배였다. 지금은 300배다. 건강보험 등 사회안전망이 취약해 국민이 체감하는 격차는 더욱 크다.
월가 시위는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월가에서 일어났기에 주목도가 높을 뿐, 이와 유사한 시위는 이미 세계 도처에서 벌어졌거나 계속되고 있다. 북아프리카발 재스민혁명은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에서 정권을 축출했고 중동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는 이민자와 실직 청년들의 거리 폭동이 있었고 칠레에서는 대학생 시위로 정권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특정 용어로) 규정할 필요가 있는 어떤 현상이 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에너지 환경 빈부격차로 인한 지구의 대붕괴를 예언한 케임브리지대 폴 길딩 교수의 말을 인용해 이것이 ‘대붕괴(Great Disruption)’의 전조이거나, 아니면 에지센터 공동회장 존 하겔3세가 설파하는 “세계화와 정보기술(IT)혁명이 융합된 ‘대전환(Big Shift)’의 초기단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청년층의 절망, 출구 안 보인다
충격과 변화의 미래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이런 현상의 근저에 비전도 희망도 없는 청년층의 불만과 분노가 잠재돼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들은 기존의 정당체제를 불신하고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신병기로 결집한다. 신자유주의의 아들딸인 이들은 IT혁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분배에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월가 시위는 수차례 자기변신을 해온 자본주의에 대해 또 한번의 성찰과 변신을 요구하는 경고장이다. 대붕괴인가, 도약을 위한 대전환인가. 세계가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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