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863년 노예해방을 선언한 이후에도 100년간 미국 남부 흑인들은 극심한 차별을 받았다. 특히 1877년 이후 남부 여러 주와 도시는 흑백 분리를 골자로 하는 법들을 제정했다. 그것을 총칭해 ‘짐크로법(Jim Crow laws)’이라고 한다. 짐 크로는 19세기 초 미국에서 유행했던 노래 가사에 나오는 가상 인물로 1828년부터 순회극단 노래극의 주인공이 됐다. 백인 가수들이 얼굴을 검게 칠하고 흑인 역할을 했다. 그 후 짐 크로는 흑인을 경멸하는 명칭으로 전락했다.
짐크로법으로 한동안 미국 남부사회에서는 백인과 흑인이 이용할 수 있는 주거지 학교 병원 음식점 기차 버스 공중화장실 등을 분리하고, 같은 공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 앉는 자리와 출입구를 분리하는 것이 정당화됐다. 이를 테면 흑인은 버스 앞자리에 앉을 수 없었고 음식점에서도 ‘유색인용’이라고 쓰인 뒷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연방대법원까지 짐크로법을 지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분리하더라도 똑같은 대우’를 하면 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짐크로법은 1950년대 이후 불길처럼 타오른 민권운동의 거센 도전을 받았고 1960년대 중반 폐지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한때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로 불리는 유사한 정책을 시행했다. 백인 정권은 1948년 법률을 제정해 인종별 거주지 분리, 통혼 금지, 출입구역 분리 등을 선포하고 그것을 ‘차별이 아니라 분리에 의한 발전’을 추구한다며 정당화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넬슨 만델라가 민주적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된 1994년 폐지됐다.
미국의 짐크로,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시대나 있을 것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 우즈베키스탄계 한국 여성 구수진 씨는 9월 25일 부산 동구 초량동의 집 근처 사우나를 찾았다가 직원과 주인의 저지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혔지만 주인은 다른 고객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를 대며 그를 완강히 막았다. 경찰관이 출동했으나 “개인업소에서 특정인의 출입을 거부하는 것을 규제할 법률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구 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그 사실을 밝히면서 일반 한국인과 다른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전셋집을 구하지 못했던 경험, 식당 출입을 거절당한 경험도 털어놓았다.
그런 일을 외국인이나 외국계 한국인만 겪는 일일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공중목욕탕 또는 음식점 입장을 거절당한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언제까지 ‘개인업소’에서 행해지는 차별을 방치할 것인가. 공중목욕탕이나 음식점 등에서 업주가 정당한 사유 없이 고객의 입장을 거부하는 행위가 용인되는 것은 짐크로법이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시행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지금은 사라진 일이지만 과거 일본의 몇몇 공중목욕탕과 음식점 등에 ‘조선인과 개는 출입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었던 적이 있다. 그런 사정을 알게 된 한국인들이 얼마나 분개했던가.
국적 인종 민족 장애 등을 근거로 한 차별이 만연한 사회는 문명이 아니라 야만이다. 인종차별금지법이 아니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그런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인종’은 개념을 정의하기 힘들 뿐 아니라 인종차별금지법으로 풀기에는 문제가 매우 복합적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18대 국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대적 소명임을 명심해야 한다. 더구나 2010년 법무부는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를 설립해 법안 작성 작업을 진행해 왔다. 사회적 소수자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 제정은 공정사회를 이루기 위한 초석 중 하나라는 점에서 더 미뤄서는 안 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