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아랍의 봄’에 중동 시민들은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시위를 조직하여 아랍독재자들을 축출했다. 2011년 ‘미국의 가을’에 시위대들은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금융자본 기득권자들을 낙엽처럼 떨어뜨리기 위해 연좌농성을 하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졌음에도 국민 99%의 희생으로 그들만의 탐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1%밖에 안 되는 금융자본 기득권자들을 퇴출시키려는 시위는 월가에서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로 확산됐고 대서양을 넘어 유럽으로 번지고 있다.
‘월가 점령’은 2009년 초 조직돼 맹위를 떨치고 있는 극우보수 시민운동인 ‘티파티’와는 정반대의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에 위치한 진보적 시민운동이다. 미국 독립혁명은 1773년 ‘보스턴 티파티’에서 시작됐다. 보스턴 티파티는 보스턴 상인들이 영국 조지 3세가 지나치게 높게 과세한 수입 홍차를 모두 바다에 던져 버린 신자유주의적인 조세저항운동이었다. 이는 보스턴 시위대가 수입 홍차(Tea)에 대해 ‘이미 충분히 세금을 냈다(Taxed Enough Already)’는 뜻으로 ‘홍차 파티(TEA Party)’로 명명한 데서도 볼 수 있다. 보스턴 티파티 이후 236년이 지난 2009년 티파티라는 말이 보수적인 중산층과 노인세대 사이에 부활했다. 티파티는 2009년 8월 민주당의 아성인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직을 점령했고, 2010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미국 하원을 차지해 하원 내 추종자들로 하여금 대화와 타협이라는 오랜 미국 의회민주주의 전통을 깨고 버락 오바마를 식물대통령이 되게 하였고, 급기야 2조4000억 달러 재정적자 긴축안을 밀어붙여 미국이 국가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수모를 겪게 했다.
대의민주주의 작동 안돼 발생
티파티 운동은 신자유주의운동이지 경제민주화운동은 아니다. 유럽 시민들에 비해 ‘충분히 세금을 내지’ 않고 있음에도 그들은 보수적인 감세운동, 사회복지 축소를 고수하고 재정건전성, 작은 정부를 주장하면서도 강력한 국가안보를 외치는 자기모순적인 대중 선동행위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감세운동이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자유주의와도 양립할 수 없는 이유는 1978년 ‘캘리포니아 주민발의 13’의 비참한 결과에서 확인된다. 캘리포니아 중산층 시민들은 1978년 조세저항운동을 벌여 ‘주민발의 13’을 통과시켰다. 핵심 내용은 ‘재산세는 1%를 넘지 못하고, 세율을 인상하려면 주민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민발의 13’으로 인한 감세는 주 재정적자를 누적시켜 미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경제규모가 큰 캘리포니아 주가 부도 직전에 몰려 있고 3분의 2 조항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민발의 13’을 개정 및 폐지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주민을 위한 교육, 복지, 메디케어, 연금, 치안 지출이 삭감되고 가장 부유한 주의 주민들이 민주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와 존엄성을 박탈당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어긋나는 결과이며 감세운동이 주장하는 부자의 경제적 자유를 위해 일반 시민의 정치적 자유, 사회적 권리가 희생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자유주의에도 위배된다.
티파티와는 달리 ‘월가 점령’은 민주적 시민운동이다. 그들은 미국에서 1%의 기득권자가 아니라 99%의 시민이 주권자라는 것을 확인하려 하고 있다. 월가 점령자들은 금융자본가에게만 화살을 겨누고 있지 않다. 그들은 티파티의 감세와 재정긴축 밀어붙이기가 미국을 다시 경제위기로 몰면서 자신의 일자리를 뺏어가고 있다고 분노하고 있다. 월가 점령자들은 금융자본의 이익에 놀아나 월가 점령을 ‘계급전쟁’이라고 선동하는 공화당과 주류 언론은 물론이고 이를 저지하지 못하고 동조까지 하는 민주당과 오바마의 무능 및 무관심에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그들은 미국 사회경제시스템의 근본적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 정치권에 경고 사이렌 역할
티파티도, 월가 점령도 모두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터져 나온 직접민주주의적인 시민운동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표들이 국민 의사를 제대로 대의하지 못할 때 대의민주주의에 불이 났다고 경고사이렌을 울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이 폭력을 수반했던 ‘아랍의 봄’과 평화적 시위로 자신들의 요구를 표시하는 ‘미국의 가을’과의 차이다. 2012년은 선거의 해다. 2012년 11월 미국 시민들은 2011년에 소셜미디어라는 탈(脫)근대적인 방식으로 제기한 문제들을 대의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전초전인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고 2012년 4월과 11월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있다. 대선 예비주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1% 기득권자들이 아닌 주권자인 99%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의 이익을 실현시켜 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면 당선된다는 간단하고 자명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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