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외교는 많은 일본인에게 충격을 던졌다. 이 대통령의 방미 기간에 진행된 모든 행사와 일정은 많은 공을 들여 계획됐고, 대담하게 실행됐으며, 세련된 연출에 따른 것이라는 느낌을 줬다. 외교 전문가 중에는 ‘부시와 고이즈미’, ‘레이건과 나카소네’ 시대의 미일 정상회담을 떠올렸다는 이도 적지 않았다. 우선 한미 양국이 거둔 외교적 성과를 축하하고 싶다. 한미관계가 다시 공고해지는 것은 일본으로서도 부정적이지 않다.
놀라운 것은 이 대통령의 공식방문에 맞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미 의회에서 통과됐다는 점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두고 의견이 분분해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일 관계와는 대조적이다. 이 같은 시의 적절한 외교가 있었기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미한 동맹은 전례 없을 정도로 강화됐다” 혹은 이 대통령의 “양국 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표현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두 정상이 한미 FTA 통과 소식을 워싱턴 근교의 한국음식점에서 들었다는 점은 두 사람의 개인적 친밀도가 상당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대통령은 국빈 자격으로 환영식과 만찬회에 참석했고, ‘새로운 친구에 대한 의례’ 차원에서 상하 양원 합동연설도 했다. 두 사람은 디트로이트의 제너럴 모터스(GM) 공장을 시찰하며 FTA의 경제효과를 과시했다. 이 같은 정상들의 개인적 신뢰관계는 국가적인 자산임에 틀림없다.
한국 국회의 비준을 거쳐 한미 FTA가 내년 1월 발효되면 공산품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관세가 5년 내에 철폐된다. 7월에 발효된 유럽연합(EU)과의 FTA를 감안하면 한국의 FTA 체결 지역은 총수출액의 40%에 해당한다. 이는 일본의 2배에 이르는 것이다. 앞으로 일본의 자동차와 전기·전자 산업은 매우 힘든 조건 아래서 한국 기업과 경쟁할 수밖에 없게 됐다.
양국 정상회담이 일본에도 ‘예기치 않은 효과’를 가져다줄지 모른다. 일본 언론이 한미 정상회담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다음 달 하와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일본 내의 TPP 논의가 고비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이 대통령의 방미와 한미 FTA는 일본 내부에 TPP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분명하게 설명해줬다.
내년 11월 대선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은 경기 회복과 고용 개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수출을 두 배로 늘린다는 목표를 잡고, 성장하는 아시아 국가와의 FTA 체결을 통상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안보 분야에서도 미국은 한일 양국을 ‘태평양지역 안전보장의 초석’으로 여기고 있다.
이 때문에 태평양을 두고 펼쳐지는 드라마는 일본의 TPP 교섭 참가라는 제2막을 필요로 한다. 지난달 21일 뉴욕에서 이뤄진 미일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이 TPP 교섭 참가 논의에 속도를 내줄 것을 요구했고,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가능한 한 빨리 결론을 내겠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의 방미 성과에 조용히 갈채를 보낸 것은 노다 총리를 포함한 일본의 교섭 추진파일지도 모른다.
한국은 일본과의 라이벌 관계를 의식해 외교적 주도권을 쥐고 싶을 것이다. 또 일본 제품과의 차별화가 FTA 전략의 핵심일지 모른다. 그러나 FTA는 본래 지리적으로 근접한 이웃 나라끼리 체결해야 효과가 큰 법이다. 먼 나라와의 경제연대는 무역을 촉진할지는 몰라도 고용 확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일본과 한국이 경쟁과 협력 속에서 경제연대를 발전시켜 나갈 때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파트너십이 탄생할 수 있다. 노다 총리의 한국 방문이 새로운 양국관계를 여는 첫발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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