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돌고 도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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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0일 03시 00분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연전 미국 체류 중에 리버보트(Riverboat) 카지노(육상 도박 불허정책의 회피수단으로 고안된 선상 카지노) 취재차 미시시피 강을 찾았을 때다. 그곳은 시카고 서쪽 250km 거리의 대븐포트(아이오와 주). 제법 큰 화물선 여러 척이 정박된 강안의 항구도시였는데 내가 찾던 카지노 배도 거기서 출항했다. 배는 19세기 개척기가 배경인 마크 트웨인(1835∼1910)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등장하는 패들보트(Paddle-boat·둥그런 수차를 돌려 전진하는 증기선)였다.

그 배로 강을 오르내리던 중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려왔다. 까까머리 중학생 때(1970년대 초) 최고스타 남진 나훈아의 가요 못잖게 인기 짱이던 팝송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였다. 가사 내용은 이렇다. 뉴올리언스나 멤피스 같은 대도시에서 뼈 빠지게 일했지만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던 청년이 다 때려치우고 여기 미시시피 강에 찾아와 히치하이킹(허락된 무임승차)으로 패들보트인 ‘프라우드 메리’에 오른다. 그리고는 뱃전에서 하염없이 돌고 도는 수차를 보며 넋두리를 되뇌는데 반복되는 후렴에 낙담한 심정이 녹아있다. “그래. 돌고 도는 수차처럼 내 인생도 돌고 돌아 어디로든 가겠지.” 가수 조영남이 부른 ‘물레방아 인생’이 바로 이 노래의 개사곡이다.

세상사 돌고 돈다는 걸 최근 ‘공유경제(Sharing Economy·생산된 제품을 여럿이 공유해 쓰는 협업소비)’ 트렌드를 소개한 기사(본보 10월 17일자 A1·3면)를 읽으며 새삼 확인했다. 공유경제의 핵심은 ‘나눠 쓰기’다. 릴레이라이즈(www.relayrides.com)는 노는 차를 헐값에 빌려주고 에어비앤비(www.airbnb.com)는 안 쓰는 집(혹은 방)을 싸게 임대한다. 돈을 받으니 거래임에 분명하나 애당초 빌려 줄 목적으로 투자한 게 아닌 데다 대가도 시장가격 이하니 사업은 분명 아니다. 아예 돈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무료숙박 중개사이트인 카우치서핑(www.couchsurfing.org)이 그렇다. 카우치는 소파다. 구미에서 소파는 손님 재울 침대의 대용품. ‘땡전 한 푼 없이 떠난 세계여행’을 쓴 미하일 비게(영상저널리스트·독일)의 남극까지 3만5000km 무전여행도 카우치서핑 덕분이었다.

인류역사는 나눠 쓰다(교환경제)가 사고팔기(화폐경제)로 발전했다. 그 사실에 비추면 내 것을 나누는 공유경제는 분명 퇴보다. 그러나 과잉소비로 지구자원과 환경이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도 그 판단이 옳은지. 대답은 부정적이다. 오히려 현명한 자구책으로 환영일색이다. 더불어 앞날도 밝아 보인다. 서양(미국)에서 움텄다는 점에서다. 공유란 개념은 정서상 동양 쪽에 가깝다. 그럼에도 서양이 선취한 건 ‘더 큰 다급함’ 때문.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대량소비의 화신이자 화폐경제의 총아 아닌가.

나눠 쓰려면 양보와 인내, 배려와 존중심이 요구된다. 하지만 세상은 개인주의가 판친다. 거기서 이런 측은지심은 연목구어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건다. 비게가 책 끝머리에 남긴 한 줄 글이 근거다. ‘언론이 말하는 부정적인 인간상이 현실과 반드시 부합하지는 않는다’던. 모든 문제를 사람을 통해 해결한 그의 무전여행 자체가 또 다른 ‘공유경제’였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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