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성동기]‘1 대 1027’ 샬리트 병장 석방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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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0일 03시 00분


성동기 국제부 기자
성동기 국제부 기자
2006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납치된 이스라엘의 길라드 샬리트 병장(25)이 억류된 지 5년 4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자 이스라엘 국민들은 자신의 아들이 돌아온 것처럼 반겼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18일 샬리트를 아버지 노암 씨에게 인도하며 “당신의 아들을 고국으로 데려왔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로선 단 한 명의 군인, 국민의 목숨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대국민 약속을 지킨 셈이다.

하지만 ‘아들의 귀환’이라는 기쁨의 이면에서 이스라엘 사회는 깊은 고민과 걱정에 싸여 있다. 이스라엘은 샬리트 1명을 넘겨받는 대신 팔레스타인인 수감자 1027명을 풀어달라는 하마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비싼 몸값’이다.

이미 풀려났거나 앞으로 석방될 팔레스타인인 수감자 중에는 자살폭탄 테러를 조종했거나 살인 등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적지 않다. 네타냐후 총리는 “석방된 테러리스트가 다시 테러를 자행하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지만 은밀하게 진행되는 테러 모의를 100%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테러로 가족을 잃은 이스라엘 유가족들을 중심으로 “정의가 무너졌다”며 반발하는 움직임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테러리스트’(이스라엘의 관점에서) 석방이라는 나쁜 선례는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선 “새로운 샬리트가 필요하다” “이스라엘 군인 납치는 우리의 목표”라는 과격한 구호가 쏟아지고 있다. 하마스 대변인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 수감자를 교도소에 가두는 한 샬리트가 마지막 피랍군인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혀 또 다른 납치를 시사했다.

이번 맞교환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 개선의 획기적 계기가 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스라엘 정부의 이번 결정은 평화협상 파트너인 팔레스타인자치정부가 아니라 폭력투쟁 노선을 고수하는 하마스에 힘을 실어줘 납치와 테러가 빈발하는 불안정한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조국을 위해 몸을 던진 단 한 명의 병사라도 구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국가의 책무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맞교환 결정은 위대하다. 하지만 이번에 풀려난 팔레스타인인 수감자가 다시 총을 겨눠 이스라엘 민간인이 숨지거나, 다른 병사가 하마스에 납치된다면 네타냐후 총리는 희생자 가족에게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비극적인 적대사가 빚어낸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성동기 국제부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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