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려 한다, 죽기 전에. 얼마나 대단한 여행이기에 ‘죽기 전에’라는 단서에 거창한 다짐까지? ‘버킷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을 적는 것이지만, ‘할 수 있을 때 꼭 해보자’는 마음의 다짐이기도 하리라 생각한다. 나는 할 수 있을 때 두 가지 여행을 하고 싶다.
첫째, 우리 회사 ‘올댓시네마’ 직원들과 함께 여행하기. 영화 홍보마케팅 회사를 만들고 시작했을 때 언제까지 해야겠다고 기간을 정해 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이 햇수로 18년이 됐다. 직원 두 명으로 시작했을 때 이렇게 많은 이들과 함께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동안 회사를 거쳐 간 많은 직원들이 영화계의 일꾼으로, 아이 엄마로, 또 다른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그들을 보면 대견하고 든든하다. 거의 모두 우리 회사가 사회 첫 직장이어서 각별한 애증의 마음을 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축하할 일이 있으면 1년에 한두 번씩 모이긴 하지만 이제는 모두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다. 다 같이 둘러앉아 추억 보따리를 풀어 놓으며 한바탕 놀고 싶다. 모두들 저마다의 자리에서 일하기 때문에 시간 내는 게 쉽진 않겠지만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소원이라는데 거절하지는 않겠지?
나는 열광적인 축구팬이다. K리그 경기는 물론이고 주말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 유럽 챔피언스리그, FA컵 경기 등을 챙겨 보느라 밤잠을 설치곤 한다. 그래서 두 번째 떠나고 싶은 여행은 남편과 함께하는 전 세계 축구여행이다. 특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는 꼭 보고 싶다.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그해에는 올드트래퍼드 구장에서 뛰는 그를 보기 위해 맨체스터로 휴가를 떠나기도 했다. 다행히 박 선수가 선발 출전해 90분을 모두 뛰는 경기를 보는 행운을 얻었다. 7만여 관중과 함께 열광적으로 응원하며 경기를 즐겼다. 경기가 끝난 다음 열기를 식히지 못하고 운동장 뒷문에서 열혈 팬들과 “박지성!”을 연호하며 기다렸다. 기다림 끝에 판데르사르 골키퍼와 함께 나오는 박지성 선수의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맨유 마크가 새겨진 모자에 받은 사인을 지금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언젠가 유럽 축구여행을 꼭 하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다. 이제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해외에 많이 나가 있어 그 즐거움이 더 클 것 같다. 먼저 영국으로 날아가 아스널의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볼턴의 리복 경기장, 꽃미남 토레스가 뛰고 있는 스탬퍼드 구장, 리버풀의 안 필드 경기장, 선덜랜드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를 거쳐 스코틀랜드의 셀틱 파크에 들른 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누캄프 경기를 보고, 독일을 지나 터키에 가서 FC서울의 사령탑이었던 셰놀 귀네슈 감독이 지휘하는 트라브존스포르의 경기도 보고 싶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렌다.
2008년 영화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홍보했다. 당시에는 버킷리스트라는 말 자체가 생소해 이 단어의 의미를 관객에게 알리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다. 이젠 버킷리스트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니 참 재미있고 한편으로 뿌듯하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면서 어떤 이는 소박한 소망을 되새겨 보고 또 어떤 이는 원대한 꿈을 그려 볼 것이다. 그들의 모습에 내가 작게나마 일조한 것이리라. 영화의 한 장면이 기억난다. 두 주인공 중 한 명이 말하기를, 1000명의 사람에게 만약 가능하다면 언제 죽는지 알고 싶느냐고 물었는데 응답자의 96%가 “알기 싫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자신은 나머지 4%처럼 남은 시간을 알 수 있다면 홀가분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죽음을 앞두니 그게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얘기한다. “우리가 가장 많이 후회하는 건 살면서 한 일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이라고.
인생의 기쁨을 찾기 위해 늦은 때란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살면서 가장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하면 어쩐지 거창해서 고민이 되지만, 살아 있을 때에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그 어떤 것을 버킷리스트에 올려도 소중할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어서 여행 떠날 채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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