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사상 초유의 전력대란이 발생했다. 무려 160여만 가구에서 발생한 정전은 우리 사회를 한마디로 혼돈과 공포의 소용돌이 속으로 한순간에 몰아갔다. 평소 전기가 주는 편의와 필요성에 대해 무심히 지내오다 막상 불똥이 떨어짐으로 인해 많은 자성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지금 수도 서울에는 단 하나의 발전소가 있다. 과거 교과서에도 실린 ‘당인리발전소’라 불리는 서울화력발전소다. 인구 1000만 명이 살고 있는 서울의 전력 수요는 전체 공급량의 약 11%를 점유하고 있다.
반면에 생산되는 전기가 전체 발전량의 0.3%에 불과한 현실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번 정전으로 인해 우리는 생산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전기 요금으로 인한 소비자의 과다한 전기 사용, 한전 등 전력그룹사의 부채 증가, 산업화에 따른 발전소 건설투자 부담 가중 등의 문제점을 깨닫게 됐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의 지혜를 모아 다시는 이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근 정부는 전기의 효율성 증대와 살아있는 산업발전의 역사물을 살리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당인리발전소를 리뉴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근대 산업화를 거치며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가장 큰 견인차였던 당인리발전소. 우리나라 화력발전의 효시인 당인리발전소는 지난 80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지금 있는 자리에 1970년대 초 건립된 4, 5호기만 남아 있다. 당인리발전소는 지금도 수도 서울의 전력 공급원이자 주파수 안정, 지역주민에 대한 난방열 공급 등 발전설비로서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의 이전 요구에 현 정부도 발전소를 이전하고 문화발전소를 만들어 지역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키기로 공약했다.
최근 전력사고 이후 전력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가 당인리발전소를 지하화하고 리모델링하여 환경 친화적인 첨단 발전소로 개발하기로 방침을 정하자 지역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지역주민들과의 대화가 부족한 가운데 진행된 점에서 이들의 반발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기존 시설을 효율적으로 첨단화하는 사업 역시 국가적으로도 더는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다.
지난해 12월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을 두고 주민 반대로 난항을 겪어오던 울산 북구는 울산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대표 등 45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의 중재로 최종 합의에 성공해 큰 관심을 끌었다. 무엇보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배심원단의 결정에 대해 주민과 구 측이 합의정신을 존중해 갈등을 매듭지었다는 점에서 님비 현상과 관련한 성공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당인리발전소 역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주민 간의 원활한 대화를 이루어냄과 동시에 지역주민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중재인단 등을 구성하여 이해당사자 간 아름다운 합의를 통한 안정적인 전력공급망 확충의 성과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현명한 판단과 결정으로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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