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보다 더한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또 있을까. 사사건건 충돌해 온 ‘이웃사촌’ 부산과 경남. 이번엔 공항 이름을 놓고 으르렁거린다. 부산시의회는 최근 김해국제공항 명칭을 ‘부산국제공항’으로 바꿔 달라는 대(對)정부 건의문을 채택했다. 김해국제공항이 위치한 곳은 과거 김해였다. 행정구역 조정으로 현재는 부산 강서구가 됐다. 부산시의회는 “세계 740여 개 공항이 행정구역 이름을 쓰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해시와 김해시의회는 “많은 돈을 들이면서 35년 동안 사용한 이름을 왜 바꾸려 하느냐”며 발끈했다. 나아가 부산시에 편입된 옛 김해 땅도 되찾겠다는 태세다.
1963년 분리된 두 광역 지방자치단체는 끊임없이 멱살잡이를 해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건 대선공약인 동남권신공항 입지를 놓고 가덕도(부산)와 밀양(경남)이 격돌하다 정부의 백지화 방침에 따라 휴전 상태다. ‘신공항을 가덕도에’라는 현수막으로 시내를 도배했던 부산시. 요즘 ‘김해공항 가덕도 이전은 이제부터’라는 대체 현수막을 내걸고 경남도를 자극한다. 경남도는 “김해공항 명칭 변경 추진도 향후 신공항 입지 선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의도”로 의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개통한 부산∼거제 거가대교 버스운행 방식을 놓고도 싸움이 붙었다. 법적인 다툼을 거듭하는 사이 주민 편의는 뒷전으로 밀렸다. 진주 남강댐 물을 부산에 공급하는 문제 역시 “깨끗한 물 좀 나눠 먹자”(부산) “남는 물이 어디 있느냐”(경남)며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하늘이 내린 물은 특정인 소유가 아니다. 행정구역만 다를 뿐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논의를 했다면 이렇게 등지진 않았을 것이다.
부산과 경남 진해 해안에 건설된 새 항만에 대한 명칭 문제도 앙금이 남아 있다. ‘부산 신항’과 ‘진해 신항’으로 각각 나뉘어 심하게 다투다 정부가 ‘부산항 신항’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확정했지만 지금도 부산지역 안내표지판엔 ‘부산 신항’으로 표기돼 있다. 경남 쪽에선 ‘진해 신항’으로 표기해 오다 올해 초 언론의 지적을 받고 ‘부산항 신항’으로 고쳤다. 부산시도 바로잡는 것이 옳다. ‘부산 신항’으로 쓰려면 먼저 관련 규정부터 손질하는 게 순서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을 통해 발전한다. 하지만 부산시와 경남도 간 마찰은 대부분 감정적이고 비생산적이다. 세계 경제위기에 대응할 광역경제권 구축 등 많은 현안을 놓고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판이다. 항만과 공항, 인적 물적 자원을 토대로 조선업과 기계 및 중화학공업을 선도하는 동남권은 수도권과 더불어 한국경제의 또 다른 중심이다. “동남권 특별자치 도를 만들자”는 제안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때로 양보하고 주고받으며 시너지 효과를 내면 얼마나 좋은가.
이 지루한 ‘전쟁’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는 허남식 부산시장과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나서야 한다. 34년 관료생활을 한 허 시장은 언필칭 ‘행정의 달인’이다. 김 지사도 대권 후보로 거론될 만큼 무게 있는 정치인이다. 고질적인 지역 갈등을 해결하고 발전적인 논제를 이끌어내는 일은 그들의 책무다. 한시기구에 맡기든 끝장 토론을 하든 사안별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허 시장 행정력은 과대 포장된 것” “김 지사가 그리는 큰 정치는 희망사항”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 늦기 전에 두 자치단체장과 주민 모두 ‘아전인수(我田引水)’가 아니라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동반 성장에 어깨를 겯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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