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양승함]이제 갈등 봉합하고 앞으로 나가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8일 03시 00분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한국사회의 갈등 양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끝났다. 크게는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의 갈등이요, 작게는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갈등 및 세대 간의 갈등이다. 이런 갈등의 기저에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과 변화를 통한 새 질서를 요구하는 세력의 충돌이 있었다. 결국 서울시민들은 새 질서를 선택했다.

시민단체 정치참여땐 순수성 상실

새 질서란 공익, 공생, 공정으로 추상화하여 말할 수 있다. 경제침체 상황 속에서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각해지고 중산층이 붕괴하고 서민층이 늘어났다. 젊은층의 취업난은 증폭되고 물가와 전세대란으로 서민층의 민생은 한층 불안정해졌다. 권력을 가진 정치권은 이런 문제해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리당략과 내부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해 왔다.

이상의 문제들은 국가적 차원의 것이지만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압축돼 그 결과를 결정지었다. 정부는 친서민, 공정사회, 공생발전을 내세웠지만 말뿐이고 행동은 전혀 달랐다. 시민들의 분노는 새 질서를 상징하는 범야권의 박원순 후보를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정당정치의 위기 이상의 것이다. 이것은 정치인은 물론 국민 모두가 구태의연한 생각과 행동을 바꿔야 함을 의미한다. 다수의 서울시민은 박원순 후보로부터 공익을 위한 헌신, 더불어 함께의 나눔 정신, 바르게 살려는 의지를 본 것이다. 정치권의 어느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참신성이요, 이것이 바로 안철수 현상의 기본적 바탕이기도 하다.

이제 박원순 시장은 치열했던 선거전만큼 산적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새 시장은 우선적으로 서울 시정이 과도하게 정치화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내년 대선을 위한 전초전 양상으로 비친 서울시장 선거의 분위기를 가라앉혀야 한다. 아무리 서울시가 최대 지방자치단체로 중앙정치와 밀착돼 있다고 하더라도 서울 시민을 중앙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해서는 안 된다. 서울 시정이 내년 대선을 위한 세몰이 정치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울 시정이 과도하게 정치화된 직접적인 원인은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그에 따른 진보와 보수 간의 이념적 대립이다. 이념적으로 분열된 지역사회는 지방자치의 본래 목적인 생활정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 진보와 보수의 대립으로 첨예화된 갈등을 봉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서울시장이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전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대 후보를 만나 화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갈등 봉합의 한 방편이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제도권 정치에 심각한 위기를 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시민단체들의 정치 참여로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상실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자아낸다. 진보적 시민단체들의 전폭적인 지지 활동이 새로운 시정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면 정부를 감시해야 하는 시민운동의 본연의 자세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시민운동단체들의 정치활동이 관례화하는 것은 사회적 정치적 안정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민을 위한 생활정치로 나아가야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또 한 번 위력을 떨친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층 다수가 사용하는 SNS, 특히 트위터가 선거 정보의 확산과 선거 당일 지지층 투표 독려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트위터 사용의 확산은 정보 검증이나 신중한 정책 토론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새로운 시장은 시정에 대해 진지한 숙의를 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새롭게 출범하는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의 주요 과제를 원만히 해결하여 새 질서를 형성하고 모든 시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생활정치를 실현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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