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재·보선 성적표를 받아든 민주당 의원들은 답답할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지원한 박원순 후보가 승리했지만 민주당 후보는 아니었다. 민주당은 제1야당이면서도 범야권 후보 경선에서 무소속의 박 후보에게 패했다. 민주당은 서울 양천구를 비롯해 7곳의 기초단체장 선거에 후보를 내보냈으나 텃밭인 전북 두 곳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한나라당에 졌다. 이번 재·보선에서 두 번 진 셈이다. 다시 지역당으로 전락했다는 탄식이 나올 만하다.
민주당은 박원순 서울시장 탄생의 조연일 수는 있어도 주연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무명(無名)에 가까운 박 시장에게 힘을 불어넣은 것은 민주당이 아니라 안철수 바람이었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어떤 후보의 당선을 위해 선거운동을 도와주는 것은 선거 대행업체가 하는 일이지, 정당이 할 일이 아니다”라며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마치 민주당의 승리인 양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야권 대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민주당이 이를 주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시민단체 출신인 박 시장의 등장은 이런 구상이 공허한 것이었음을 드러냈다. 현재로선 야권 통합 논의의 주도권도 민주당이 아닌 장외(場外) 시민세력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기존 정당과 각을 세우는 ‘안철수 신당’이 부상하면 민주당은 존립 위기에 내몰릴 수도 있다.
민주당은 야권 통합에만 매달렸을 뿐 당의 쇄신에는 관심이 없었다. 당내 분파주의는 내전 상태로 치닫고, 당의 정체성은 혼란을 겪고 있다.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다면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시각차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민주노동당의 눈치를 살피는 한심한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야권 통합 논의가 당내 갈등이나 문제를 덮는 방편이 된다면 독약에 불과할 뿐이다.
서울시장 선거 결과는 정당정치의 실종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정당정치가 흔들리면 정당을 통해 민의를 수렴하는 대의(代議)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민주당은 박 시장의 당선을 한나라당보다 더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당이 구태정치를 털어내야만 정당정치를 회복하고 지지층을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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