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허승호]백두산 금강산에서 일어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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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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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백두산의 중국 쪽 지역에서 ‘온천별장호텔’을 운영하던 박범용 총경리(사장)는 2007년 8월 기막힌 일을 당했다. 중국 지린(吉林) 성 산하 창바이산(長白山)보호개발구관리위원회가 중장비를 동원해 호텔 건물을 다 헐어버린 것. 지린 성 정부는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백두산에 관광호텔을 유치하면서 15∼45년의 운영기간을 보장했다. 그러나 관리위는 이에 아랑곳 않고 2006년 9월 백두산 매표소 안의 5개 호텔에 철거 방침을 통보했다.

ISD는 정책신뢰성 위해 필요

이 호텔들은 한국인, 총련계 재일동포, 중국 국적의 조선족 등 모두 한국계가 소유하고 있다. 지린 성의 방침이 알려지자 우리 정부가 재고(再考)를 요청했고 호텔들도 중국 정부 상무부와 지린 성 상무청 외국인투자기업고발처에 이의를 신청했다. 하지만 당국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응답이다. 건물이 헐리지 않은 호텔들은 당국의 눈치를 보며 지루한 물밑 접촉을 계속하고 있다.

관리위는 ‘백두산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하려면 생태계 회복이 필요하다’고 호텔 철거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대형 뷔페식당을 새로 여는 등 앞뒤가 안 맞는 일도 했다. 어쨌거나 꼭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면 당국의 보장을 믿고 이뤄진 투자에 대해서는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

투자자들이 중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할 수도 있다. 그러면 중국 법정에서 다퉈야 한다. 1992년 체결된 한중(韓中)투자보장협정에는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제도(ISD)’가 없기 때문이다. 그곳 호텔의 한 책임자는 “사업가가 중국 당국을 제소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그것도 중국 법정에서라면 정말 바보짓”이라고 말했다.

만약 ISD가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ISD란 정부가 당초 약속(투자협정, 투자인가, 투자계약)을 지키지 않아 외국인 투자자가 손해 볼 경우 해당국 법원이 아니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조정을 요청할 수 있게 하고, 해당국 정부는 그 조정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우리가 85개국과 맺고 있는 투자보장협정 중 81개국과는 이 조항을 포함시켰다. 각종 자유무역협정(FTA)에도 넣어뒀다. 하지만 19년 전 맺은 중국과의 투자협정에는 이 조항이 없었고 그게 화근이 됐다.(그 후 한중투자협정은 ISD를 포함하도록 개정됐다)

북한 금강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 군인의 총격으로 피살되면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자 북한은 아무런 보상 없이 현대아산 소유 시설을 몰수했다.

이처럼 정부가 약속을 안 지켜 투자자에게 손해를 입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만일 미처 생각 못했던 정책적 필요로 인해 꼭 그래야만 한다면 피해를 보상해줘야 한다.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그래야 한다. 이것이 정책의 신뢰성, 투명성, 예측가능성이며 우리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이다.

미국 아닌 한국이 주장할 제도

그런데 일부 야당 사람들은 “ISD는 정책주권을 미국에 양도하는 것”이라며 한미 FTA를 반대하는 이유로 삼는다. 백두산, 금강산에서 당한 일을 우리도 미국에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가? 왜 다른 나라와는 괜찮은데 유독 미국과 이 약속을 교환하면 주권이 침해된다는 걸까? “미국 쇠고기를 먹을 바에는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넣겠다”는 수준의 억지 같다.

사실 한국은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보다 내보내는 해외투자가 훨씬 많다. 최근 3년간 한국의 대미 투자는 미국의 대한(對韓) 투자의 3배 규모다. ISD는 미국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주장해야 할 제도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ISD는 국내 제도 선진화에 기여할 것… ISD 확대를 통해 우리의 대외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열린우리당의 ‘2007 한미 FTA 평가보고서’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 ISD 반대, 참 말도 안 되는 코미디다.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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