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주펑]카다피 죽음에 담긴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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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일 03시 00분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리비아의 전 국가원수이자 독재자인 무아마르 카다피의 마지막 모습은 많은 상처를 지닌 처참한 몰골이었다. 그는 총으로 정권을 탈취했고 총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씁쓸하고도 역설적인 일관성을 보여줬다. 현대 정치사에서 일관되게 ‘총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은 아마 카다피 한 사람뿐일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다시는 카다피 특유의 걸쭉한 악담을 들을 수 없게 됐다. 미녀 경호원들 사이에서 옷깃을 휘날리며 걸어가는 모습도 추억으로 남게 됐다. 미국 영국 프랑스의 정치가들이 승리의 기쁨과 허전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카다피가 없는 리비아는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 한층 더 이슬람교적인 나라가 될 것인가, 아니면 민주적이고 세속적인 나라가 될 것인가. 물론 현재로서는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과도국가위원회(NTC)를 이끄는 무스타파 압둘잘릴의 발언에서 이 나라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그는 10월 20일 “우리는 무슬림 국가로서 이슬람 교리를 입법의 기본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슬람 교리와 충돌을 일으키는 법률은 모두 무효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압둘잘릴은 혼인법을 예로 들며 “카다피 시절에는 일부다처제가 금지됐지만 이는 이슬람 국가에서 허용되는 사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NTC는 이미 일부일처제를 폐기하고 일부다처제를 실행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일부다처제 도입을 주장하는 그의 발언은 과연 역사의 진보인가, 아니면 퇴보인가.

자유와 해방을 쟁취한 리비아 인민들은 앞으로 알라의 이름으로 간통한 부녀자를 백주대낮에 돌로 처형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소매치기의 손을 칼로 자르는 신체형을 통해 이슬람적인 종교의 자유를 향유할 것이다. 물론 무슬림 남성들은 부인을 여러 명 두는 자유도 누릴 것이다.

이슬람 교리와 법률을 준수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미래의 리비아는 민주를 전제로 한 이슬람교적 질서를 추구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포스트 카다피 시대의 모습’은 세계의 실망과 탄식을 수반할 소지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그 어떤 정치권력도 인류의 자유와 권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다. 오늘날 중동에서 잇따라 제거되고 있는 독재정권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러나 카다피의 죽음이 내포한 의미는 다른 독재권력과 다를 수 있다. 적어도 중동 일대에 잠재된 반제국주의 정서를 자극할 기폭제가 될 소지가 있다.

그는 3월 20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첫 공습을 받은 직후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결사항전을 외쳤다. 서방의 압력에 몸을 숙이고 있던 그가 보여준 최후의 용맹함이었다. 이는 카다피 추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카다피의 마지막 모습은 땅굴에서 끌려 나온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나, 무기력한 모습으로 법정에 끌려간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와 달랐다. 그는 총을 든 채 죽었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비인간적인 능욕과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런 광경은 향후 중동의 청년들에게 ‘반(反)서방 아이콘’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세계의 다른 독재자들 또한 카다피의 죽음이 불러온 역설을 잊지 않을 것이다. 2003년 후세인의 몰락이 준 교훈은 ‘미국의 적이 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카다피도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서방과의 화해도 모색했다. 그런데 이런 선택은 결과적으로 그의 죽음을 자초했다. 핵 없는 리비아는 너무 쉬운 상대가 돼 버렸던 것이다. 이란과 북한의 독재 권력이 더욱 핵에 집착하는 것도 어쩌면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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