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하태원]신숙자와 이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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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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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은 1994년 12월 31일까지 충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955년 통영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이순신의 시호(諡號)를 따 개칭한 것이다. 미륵산 정상에 서서 남해안을 바라보면 왜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고 부르는지 짐작할 만하다. 천혜의 군사요충지였던 이곳은 임진왜란 때 한산대첩을 이룬 곳이자 쓰시마 섬 정벌의 본진이었다. 한려수도 케이블카에서 충무김밥을 먹는 맛도 일품이지만 달아공원에서 바라보는 석양빛은 쪽빛 바다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통영 출신으로 이곳에서 음악교사를 지낸 윤이상 씨는 우리 전통 국악과 서양의 음악세계를 접목한 세계적인 음악가 중 하나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씨와 함께 윤 씨는 통영 사람들의 자부심과 닿아 있다. 윤 씨의 뜻을 기려 매년 첼로, 피아노, 바이올린의 순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자들이 기량을 겨루는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가 2003년 생겼다. 지난해 우승자인 중국의 천윈제 씨는 피아노의 ‘샛별’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올해는 ‘통영의 딸’ 신숙자 씨(69) 문제로 시끄럽다. 윤 씨의 말에 넘어가 월북한 신 씨 가족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콩쿠르 중단 요구까지 나온다.

▷음악회를 보러 한국에 온 윤 씨의 부인 이수자 씨(84)는 북한에서 귀빈급 대우를 받는다. 평양 교외의 집을 김일성에게 선물 받은 이 씨는 저서 ‘나의 독백’에서 “낮은 산이 집 주변을 두르고 있어서 산자락이 모두 정원인 셈”이라고 했다. 김일성 사망 5주기를 맞아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은 이 씨는 “대를 이으신 장군님께서 한 치의 빈틈없이 나라 다스리심을 수령님께서 보고 계실 것입니다.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며 수령님 영전에 큰절을 올립니다”라고 방명록에 썼다. 이 씨는 북한 당국의 특혜를 받아 평양 중심가에서 상점도 운영한다.

▷이 씨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선생님(윤이상)이 한번은 저한테 ‘수령님께서 꼭 형님처럼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뼛속 깊숙이 친북인사가 됐다는 고백처럼 들린다. 이런 사람이 통영에 오면 바닷가 별장에 묵는다니 이 씨와 신 씨의 처지가 대비된다. 기아와 고문이 일상인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신 씨 모녀가 겪고 있을 고초가 안타깝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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