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을 앞두고 기업 공채시험을 쳤다. 대기업들이 10월 초순 특정일을 택해 같은 날 필기시험을 보았다. 많은 회사들이 공채시험을 통해 신입사원을 뽑았기 때문에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관심이 높았다. 그때 합격해서 회사에 들어간 친구들 가운데 지금은 인사 담당자가 돼 이런 이야기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시험만 쳐서 들어온 사람들과 간단한 시험에 면접과 서류전형을 거쳐 입사한 사람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면접을 봐서 들어온 사람은 애사심도 높고 열정적으로 일해 이익 창출에 많은 기여를 하지만 시험만을 봐서 들어온 사람은 회사에 대한 불만이 높고 기여도가 낮다는 것이다.
교직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많은 제자를 길러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는 공부만 잘했던 학생이 아니다. 오히려 공부는 좀 못하더라도 장난이 심했던 학생, 말썽을 많이 피웠던 학생들도 기억난다. 지금도 가끔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는 학생도 공부는 좀 못했지만 주관이 뚜렷하고 의리가 있었던 학생이다.
제 아무리 훌륭한 사상과 제도도 결코 예외가 없었다. 진자(振子)의 추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흔들리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그 요동침이 잦아들고 어느 새 중심을 지키듯이 입학사정관제 역시 마찬가지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입시 현장에 전격 도입된 입학사정관제의 파급 효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기존 질서를 바꾸게 되는 ‘변화’의 물결에 대해 일단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갖는 것이 인간임을 이해할 때 입학사정관제 역시 그런 인간 본성을 헤아려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돼 운영되면서 학교 현장이 변하고 있다.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는 많은 대학이 추천서 양식에 수업시간의 학습태도, 동료 학생들과의 관계, 교내활동 참여도 등을 평가 항목에 넣으면서 수업시간과 학교생활에 성실히 임하지 않아도 대학만 가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수업시간이나 학교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금년부터 학생의 진로와 진학에 대해 상담해 주는 교사가 배치됨에 따라 입학사정관과 함께 고교-대학 간 연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전문성 있는 진로 또는 진학 상담이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학교엔 진로 교육 및 진로 컨설팅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없었다.
입학사정관제도는 학생부와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었던 학생의 잠재능력과 소질, 가능성 등을 다각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지식 기반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는 역사적인 사명을 띠고 있는 제도다. 이런 시대적 요구 속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입학사정관제는 필연적으로 대학 입시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며 또한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 역사의 매 순간이 그러했듯 진통 없는 발전은 없는 법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