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6월 민주당 대표실을 도청해 작성됐다는 의혹을 받은 문건이 공개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끝내 미궁으로 빠졌다. 경찰은 민주당 당대표실을 도청했다는 의혹을 받던 KBS 장모 기자(33)와 녹취록을 공개한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53)을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기로 2일 결정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사상 초유의 야당대표실 도청사건의 진실이 묻혔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특히 진실을 밝히는 게 직업인 장 기자와 입법부의 구성원인 한 의원은 경찰 수사를 회피하려는 모습만 보였다.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장 기자는 경찰 조사에서 구체적인 근거를 대지 못한 채 혐의만 부인했다. 무엇보다 진술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장 기자는 “한 의원이 녹취록을 공개한 6월 24일 당시 국회에 없었다”고 했지만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추적과 국회 폐쇄회로(CC)TV 분석을 통해 국회에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KBS는 수신료 인상 문제에 대한 야당의 대응 방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시점이었다.
경찰은 민주당 당직자에게서 “비공개 회의가 끝나고 장 기자가 ‘휴대전화를 두고 갔다’면서 당대표실을 다녀갔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장 기자의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압수수색했다. 그러나 장 기자는 그 사이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새것으로 바꿨다. “예전 것은 술에 취해 택시에 두고 내렸다”고 했지만 택시운전사는 경찰 조사에서 “두고 내린 물품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장 기자의 일부 진술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서 심증은 뚜렷해졌지만 ‘도청 장비’로 사용됐을 것으로 의심받는 휴대전화와 노트북이 사라져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한 의원은 아예 경찰 소환에 불응하며 버티기로 일관했다. 결백하다면 ‘면책 특권’에 기대지 말고 떳떳하게 경찰에 나와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서면조사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녹취록을 받았다”는 황당한 주장을 폈다. 이 같은 정황에도 경찰은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장 기자의 사법처리를 포기했다. 이제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은 검찰의 몫으로 남았다. 검사들은 ‘수사는 생물’이라고 말한다. 증거가 없어 묻혔던 사건도 새 증거가 나오면 진실이 밝혀진다는 뜻이다. 특권층 대상 수사라서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다면 대다수 국민은 또다시 자괴감에 빠질 것이다. 검찰 수사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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