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쪽 햇살을 빨아먹고/쪽쪽 노을을 빨아먹고./통통 말랑말랑 익은 홍시./톡 건드리면 좌르르 햇살이 쏟아질 것 같아./톡 건드리면 쭈르르 노을이 흘러내릴 것 같아./색동옷 입은 아기바람도 입만 맞추고 가고,/장난꾸러기 참새들도 침만 삼키고 간다.’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국어 말하기 듣기 쓰기 교과서의 첫째 마당에 나오는 김종영 시인의 ‘홍시’다. 늦가을에 홍시가 익어가는 농촌 풍경을 노래한 아름다운 동시다.
그런데 늦가을 홍시와 발길을 재촉하는 노을을 눈으로 감상하고, 홍시를 손으로 만져 보고, 가을바람을 살갗으로 느끼고, 바로 딴 홍시를 혀끝으로 맛보고, 재잘거리는 참새 소리를 귀로 음미한 후에야 비로소 이 시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은 많은 양의 지식을 책 속의 글자와 사진, 그림을 통해 배운다. 하지만 실물을 보지 않고 만져보지 않은 간접경험은 암기용 지식에 머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지식은 오감을 활용해 몸으로 익힐 때 오래 기억되고, 가슴을 뛰게 하는 지혜가 될 수 있다.
또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국어 읽기 교과서에 ‘감자’라는 동시가 나온다. ‘씨앗은 여물어야/싹이 트는데/감자는 반쪽씩/잘라 심어도/씨눈마다 굵은 싹이/솟아오르고/어둡게 자랐어도/사이가 좋아/캘 때는/온 식구가/따라나온다.’
감자를 심고, 감자가 자라는 모습을 관찰하고, 감자를 캐보지 않은 아이가 이 동시를 귀로 듣는 데 그친다면 이 동시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즉 백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옛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수학 교과서에는 ‘민지는 동생과 함께 밤을 주웠습니다. 민지는 260개를 주웠고 동생은 320개를 주웠습니다. 민지와 동생이 주운 밤은 모두 몇 개인지 알아봅시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농촌에서 밤을 주워 가면서 덧셈 공부를 한다면 덧셈의 원리가 머리에 더 쏙쏙 들어오지 않을까.
농촌은 ‘살아있는 교육장’이다. 농촌에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유래한 낫이 있는 곳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고개 숙인 벼를 실물로 볼 수 있는 곳 또한 가을의 농촌이다.
초등학교 2학기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 중 농촌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것이 셀 수 없이 많다. 멸종 위기의 두루미, 화산 활동에 의해 생긴 현무암, 갯벌, 돌탑, 누렁소와 검정소, 장승, 고택, 토종한우, 별, 반딧불이 등등.
농촌체험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최근 몇 년 사이 학교 단위에서 수학여행의 일환으로 농촌체험을 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인터넷으로 농촌체험마을을 검색해 주말에 아이의 손을 잡고 농촌으로 가는 모습은 이미 도시인의 일상생활로 정착됐다. 1사1촌 자매결연을 하고 있는 회사의 직원 가족으로 또는 회사 직원들과 함께 자매결연 농촌마을에서 농촌체험을 하는 모습도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기회가 되는 대로, 또 기회를 만들어 농촌을 자주 찾아 농촌과 농업을 체험하는 것은 자녀 교육상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깊어가는 가을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살아있는 교육장인 농촌을 찾아 빨갛게 익어가는 홍시를 오감으로 느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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