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한때는 안철수 같았던 손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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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7일 20시 00분


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등장으로 정치인 가운데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일 것이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4·27 분당을(乙)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이어 다시 한 번 손학규의 존재를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안철수의 느닷없는 출현으로 손학규의 존재는 우스워졌고, 손학규가 이끌던 민주당은 자체 후보조차 못 내는 불임정당으로 전락했다.

안철수의 등장은 손학규가 갈구해온 ‘대통령의 꿈’마저 앗아갈 지경에 이르렀다. 손학규는 2007년 대통령이 되겠다는 일념에서 배신, 배은망덕 소리까지 들어가며 한나라당을 박차고 나와 그나마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은 민주당 쪽으로 이적(移籍)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손학규는 절치부심했다. 나이 65세가 되는 내년은 사실상 손학규에게 마지막 기회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노려볼 만했다. 그래서 야권 통합 작업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안철수의 등장으로 본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대적하는 것은 둘째 치고, 야권의 통합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마저 희박해졌다. 손학규를 비롯한 모든 야권 대권주자들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안철수에게 못 미친다.

손학규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서울시장 보선 때처럼 안철수가 직접 나서지 않고 자신의 손을 들어주는 것일 게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낮다. 안철수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보기와는 달리 정치적 야심이 대단하고 정치적 판단력과 행동력도 상당한 고수급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내년 대선에 초점을 맞춰 생각하고 행동해 왔다고 한다. 만에 하나 안철수가 양보를 하더라도 성향으로 보면 손학규가 그 수혜자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손학규가 대통령의 꿈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의 그 누군가가 아니라 먼저 안철수를 이기는 법부터 강구해야 할 것이다.

20∼40대 젊은층과 중도층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실망하면서도 기존 야당을 찾지 않는 까닭부터 잘 헤아려야 한다. 민주당 같은 기존 야당들이 벌여온 대(對)정부 또는 대여(對與) 투쟁의 강도가 약해서일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본다. 신선하고 합리적인 이미지의 비정치인 안철수에게 다수가 열광하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안철수 팬들은 반대를 위한 반대나 과격 일변도의 투쟁을 일삼는 기존 야당에 식상해하고 있다.

손학규의 책임도 크다. 경기도지사 시절 손학규의 이미지는 지금의 안철수에 버금갈 정도로 신선하고 합리적이었다. “세계는 일자리 전쟁 중인데, 우리는 아직도 한물간 이념전쟁을 벌이고 있다” “삿대질의 정치는 이제 일자리를 만드는 땀의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가 싸우는 오늘의 정치야말로 최우선의 개혁 대상이다”라는 그의 말은 울림이 컸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결사 저지에서 보듯 손학규는 과거 자신이 개혁 대상으로 여겼던 그런 정치, 그런 정치인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손학규가 안철수를 대적하려면 지금이라도 낡은 이념보다는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찍새 딱새’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첫걸음은 ‘희대의 정치적 불륜’으로 일컬어지는 민주노동당과의 관계 단절로부터 출발해야 옳다. 야권 통합이라는 정치적 주술에 취해 아무하고나 어깨동무를 하다간 국민이 인식하는 손학규의 가치도, 민주당의 체급도 그 수준으로 쪼그라들고 말 것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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