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예술인들을 많이 배출한 낭만의 고장, 통영에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가 그제 폐막됐다. 이 콩쿠르는 음악 외적 요인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한편에서는 윤이상의 반인륜적·반국가적 행적이 드러난 이상 관련 행사의 중단을 요구하고, 다른 한편에선 윤 씨를 옹호하며 추모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이상과 오길남 박사 가족에 대해 처음 재조명(‘예술가의 위대한 업적과 정치적 업보’ 조선일보 2010년 4월 22일자)한 사람 중 하나로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할 의무를 느낀다.
작년 초 문제를 제기한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들은 지옥과 같은 생활을 하는 데 반해, 가해자인 윤 씨는 남북한 모두에서 추앙받으며 윤 씨 가족들은 남북한과 독일, 미국을 자유로이 오가며 풍요한 생활을 한다는 도치된 현실이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윤이상에 대한 잘못된 ‘우상화’ 작업이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것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싶었고, 별 관심을 못 끌고 잊혀져가는 북한수용소의 오 씨 가족들에 대한 우리사회의 무관심에 절망했기 때문이다.
‘赤化’ 통일을 꿈꾼 음악가
필자의 글은 약간의 관심을 이끌어내는데 그쳤다. 이미 오래전 일이라는 것과 우리 사회 특유의 북한인권 불감증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오 씨의 부인, 신숙자 씨가 윤이상과 같은 통영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지고,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이제는 ‘통영의 딸’이란 단어가 일상용어처럼 되면서 구명운동이 불붙었다. 특히 방수열 소신향 목사 부부의 노력은 이 일이 국내외에 초미의 관심사로 변한 기폭제였다. 구명운동 서명은 10만 명을 넘어섰고, 통영시민도 3만 명이 참여했다. ‘통영의 딸 구출하자’ 엽서 100만 장 쓰기 운동도 시작됐으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세계인권기구들에 송환 노력을 촉구할 계획도 세워졌다. 서명운동 측에서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였던 박원순 씨에게도 서명을 권유했지만 묵묵부답이라 한다. 박 서울시장도 차제에 확실한 입장을 밝혔으면 한다.
윤 씨 일가의 맹목적 종북 행위와 추악한 반(反)대한민국적 언행은 많이 밝혀졌고, 또 자신들의 글에도 잘 기록돼 있기에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그 행적만으로도 그는 “평화통일을 추구한 애국자”로 대한민국에서 평가받을 수 없다. 기탄교육이 출간한 어린이를 위한 위인전집에 ‘이승만’ 편은 없어도 ‘윤이상’ 편은 있다고 한다. 제목이 ‘통일을 꿈꾼 음악가 윤이상’인데 맨 앞에 ‘적화(赤化)’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옳은 제목이리라. 내용도 동심을 호도하는 허위 일색이라 심히 우려스럽다. 오 박사를 몰랐고 입북을 권유하지 않았다는 윤 씨의 변명을 유일한 근거로 대는 일부 예술인과 좌익인사들의 주장도 공허하다. 윤 씨는 오 씨 이외에도 허홍식 씨 등의 입북을 지속적으로 유도했다.
윤 씨 가족도 그동안 여러 형태의 그릇된 행적에 비해 너무나 많은 것을 누렸다. 앞으로는 그냥 북한당국이 마련해준 평양의 상점이나 잘 운영하면서 그곳의 시장경제 정착에 힘써주거나, “마치 옛 고향집으로 돌아간 것 같은 따듯함을 느끼는”(이수자 ‘나의 남편 윤이상’ 하편 107쪽) 북한에서 “우리 역사상 최대의 영도자”인 “흠모하는 수령님의 영생불멸”(윤이상·이수자 부부의 편지와 방명록 글에서 발췌)이나 기원하고 조용히 살았으면 한다.
필자는 이미 통영과 윤이상 관련 사업에 대한 해법을 여러 번 언급했고 글로 썼지만 결과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몇 달 전 제시했던 주장을 토씨 하나 안 바꾸고 분명히 다시 말하고 싶다. “예술과 인간의 행적은 분리하자.” 그러나 “더 이상 진실을 부정하고 허위에 기대지 말자.”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안이하게 대처한다면 상처는 더 곪아가고 결국은 터질 것이다. 재미있게도 일부 통영 예술인과 좌익인사들도 최근 비슷한 주장을 했다(“예술과 과거 행적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예술과 아무 관련 없는 터무니없는 윤이상의 ‘우상화’ 작업은 바로 이런 분리화에 역행하는 행위 아니었던가. 관련 사업에서 음악외적(外的)인 옳지 못한 찬사들은 당장 삭제되거나 수정돼야 한다. 홈페이지, 팸플릿, 설명문 등에서 정치적인 거짓 ‘위업’은 빼고 현대음악 작곡가로서의 업적만 열거하자. 윤이상평화재단의 명칭에서도 ‘평화’를 빼든가 다른 이름을 써야 한다.
음악 外的 찬사는 삭제돼야
그러고 나서 현대음악의 거장으로서의 윤이상에 대한 사업은 ‘협찬’을 받는 등으로 자기 힘으로 계속돼야 한다. 더는 국민 세금으로는 안 된다. 허구의 정치사회적 찬양이 사라지고 자생적 순수 음악제로 재탄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과거 행적과 예술의 진정한 분리이다. 힘든 과정이겠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 통영의 명예도 살고 통영국제음악제와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도 산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