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한국판 버핏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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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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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의 전설’로 불리는 1970, 80년대 테니스 스타 비에른 보리는 스웨덴 출신이다. 그는 현역 시절 스웨덴의 소득세율이 지나치게 높은 데 반발해 세금이 적은 모나코로 거주지를 옮겼다. 보리는 선수 은퇴 후 소득이 줄어들자 고국으로 돌아갔다. 영국의 경제 저널리스트 찰스 윌런은 “세율이 너무 높아지면 개인과 기업은 지하경제로 숨어든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의 자칭 쇄신파 의원들이 ‘한국판 버핏세(稅)’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버핏세란 미국의 주식투자가 워런 버핏이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고 주장한 뒤 생겨난 신조어(新造語)로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뜨겁다. 일부 한나라당 의원은 연간 과세표준 8800만 원을 넘는 소득구간에 적용하는 소득세 최고세율(35%) 구간을 쪼개 고소득층에게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자고 주장한다. 부유세(富裕稅) 도입은 야당인 민주당에서조차 본격적인 공론화를 꺼리는 사안이다.

▷여당의 경제통(通) 의원이나 정부 당국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이한구 의원은 “정부가 소득세 감세 철회를 결정한 지 두 달밖에 안 됐는데 부자증세를 하자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고 일축했다. 나성린 의원도 “표를 얻기 위해 별의별 정책이 다 나온다. 부유세를 도입하려면 자기들끼리 새로 당을 하나 만들어서 하라”고 꼬집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9월 “재정수지가 아주 어려운 국가가 일시적으로 취할 수 있는 특단의 조치”라고 말했다. 일부 정치인이 느닷없이 한국판 버핏세를 들고 나온 것은 내년 총선에서 포퓰리즘으로 금배지를 지켜보겠다는 얄팍한 계산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한국의 근로소득세 신고 대상자 중 실제로 근소세를 내는 국민은 60%에 불과하다. 소득세 부담은 지금도 중산층 이상 국민에게 집중되고 있다. 공병호 박사는 “여유 있는 계층은 언제라도 생물학적 조국과 결별할 수 있다. 실제 떠나지 않더라도 이들이 공동체에 대한 감정적 애착을 포기할 때 생산과 소비, 기부나 자선이 모두 감소한다”고 역설한다. 고소득층이 세금폭탄 때문에 한국을 탈출하면 가장 큰 피해는 서민층에게 돌아간다. 사정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보수우파 정당에서 부유세 도입 주장까지 나오는 현실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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