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뉴욕타임스는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과 레이먼드 켈리 뉴욕경찰국장의 기자회견 사진을 전면에 실었다. 하루 전 새벽 뉴욕경찰과 연방수사국(FBI)이 뉴욕 일대 주택가에서 마피아 조직 7개 파를 덮쳐 125명이나 검거하는 성과를 거둔 것을 발표하는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뉴욕경찰 창설 이후 최대 인원의 마피아 체포라고 평가받는 이 작전은 최근 조직폭력배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 경찰과 좋은 비교가 된다. 아마도 뉴욕경찰과 FBI가 공개적인 작전을 펼쳤다면 콜롬보나 감비노 같은 악명 높은 마피아 조직들의 보스를 검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피아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뉴욕경찰의 경우 마피아를 많이 잡지 못하면 승진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사전 경고도 없었고 작전 후 특진을 시켰다는 소식도 없다.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박수, 경찰의 자부심 가득한 미소 그리고 기자들의 “브라보”라는 환호가 전부였다.
인천 장례식장 조폭 난동사건을 계기로 총기를 사용해서라도 조폭을 검거하고, 실적이 나쁜 곳은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경찰청장의 방침에 직원들은 전쟁을 치르기도 전에 사기를 저하시킨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경찰이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만 생각하는 것 같아 마뜩지 않다. 한편으로는 낫을 든 조폭의 모습을 생생하게 본 시민들의 충격을 경찰이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런데 시민들은 6월 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검경수사권 조정 과정 중 수많은 경찰이 국회로 몰려가 마치 힘을 과시하는 것 같은 집단행동을 벌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경찰은 국민 편의를 위해 수사권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한편으론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경찰은 당시 형사소송법 개정이라는 실리를 얻었다. 그러나 동시에 떼쓰는 조직이라는 이미지를 시민들에게 심어주었다.
경찰 조직의 정체성은 범죄 예방 및 진압에 있다. 따라서 경찰은 범죄 대응 역량을 제대로 갖췄는지 그리고 국민이 범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온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는지 여부로 그 존재의 당위성을 증명해야 한다. 만약 우리 경찰이 이 소명을 다하지 못하면 국민은 경찰을 수사권 타령과 청장의 장관급 승격 그리고 직원들의 직급과 월급을 올려 달라고 늘 떼를 쓰는 거대한 이익집단으로 평가할 것이다.
2009년 말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전체 범죄의 발생비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3배 이상, 미국보다 20% 이상 높다. 또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의 최근 10년간 범죄는 감소하는 추세지만 유독 우리만 증가세다. 이는 경찰의 범죄 예방 기능이 얼마나 긴요한 것인지 보여준다. 혹여 경찰이 범죄 수사에 전념하겠다면 범죄 예방을 전담하는 또 다른 공공기관이 필요하다는 논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경찰 안팎의 작금의 소란은 지나친 계층주의 및 관료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경찰청의 기획행정 위주의 업무 추진방식, 편중된 인사권 등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경찰은 중앙집권주의라는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방청으로의 대폭적인 권한 위임은 물론이고 자치경찰로의 전환 역시 적극 추진해야 한다.
우리 경찰은 올해로 창설한 지 66년이 됐다. 66세는 지혜롭고 원숙한 나이라는 의미에서 미수(美壽)라고 했다. 미수씩이나 된 경찰 조직의 정체성과 생산성을 시민들이 대신 고민할 수는 없다. 경찰 스스로 현재의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길 바란다. 단 과시형 이벤트는 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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