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늦더위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나 블랙아웃 직전 상황까지 이르렀지만 진짜 위기는 이번 겨울에 닥칠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한국전력에 따르면 올겨울 최대전력수요(전력피크)는 전년 대비 5.3% 증가한 7853만 kW인 데 비해 공급은 2.4% 늘어난 7906만 kW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겨울철(12월 5일∼2월 29일) 예비전력은 평균 153만 kW로 적정 기준(400만 kW)에 크게 못 미친다. 강추위가 예상되는 1월 중순에 전력예비율이 1%까지 떨어지는 아슬아슬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정부는 강력한 수요 억제를 골자로 하는 비상전력대책을 그제 발표했다. 정부 계획대로 전국 1만4000곳의 대형건물과 공장에서 전력사용량을 10% 줄이면 생산 및 산업활동이 제약을 받을 수도 있다. 난방온도를 섭씨 20도 이하로 제한하는 대상에는 상업용 건물과 함께 교육용 건물도 포함됐다. 소중한 자녀들이 학교에서 추위에 떨지 않으려면 내복을 입혀야 한다. 전력의 수요 관리는 국민의 전폭적인 동참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우리는 지난겨울에도 전력난을 겪은 바 있다. 여름철에 찾아오던 전력피크가 한겨울(올해 1월 17일)에 발생해 정부가 전기난방 자제를 호소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공공기관 난방기 사용을 하루 두 시간씩 중단하도록 긴급 지침까지 시달했다. 지난겨울 전력난의 주요 원인은 이상한파와 싼 전기요금 때문이었다. 전기요금이 석유 등 다른 난방 수단보다 저렴하다 보니 겨울철에 전열기 등 개별난방이 급증하고 있다. 농업용 전력요금은 할인폭이 커 축사나 비닐하우스도 전열기로 난방을 할 정도다.
9월 정전대란도 수요 예측을 잘못한 한전과 전력거래소의 일차적 잘못이 크지만 원가(原價)보다도 낮은 전기요금 체계가 근본 원인이다. 요금 체계를 재조정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이 점에서 대기업 등 산업체에서 전력수요를 20% 이상 줄이면 정부가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한 조치는 잘한 일이다.
현재 전력수급 사정을 고려할 때 대규모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원자력발전의 비중 확대는 불가피해 보인다. 안전성 강화를 전제로 원전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해나갈 필요가 있다. 동시에 현재 완공해놓고도 정부의 운영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신고리 2호기의 상업운전을 앞당겨야 한다. 이번 겨울에 정전대란을 맞게 되면 피해는 9월 정전사태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다. 정부와 국민 모두 경각심을 가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