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안갯속의 2012년 체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4일 20시 00분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요즘 정국은 혼돈의 도가니다. 몇 달 새 불어 닥친 안철수 바람과 맞물려 기성 정당은 뭇매를 맞고 있다. 여야 거대정당을 조롱하듯 갖가지 신당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임박해 보이지만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시계(視界)제로 상태다.

대통령 직선제로 시작된 1987년 체제는 민주 대 반(反)민주 구도를 해체했다. 그 공백을 지역구도가 메워나갔다. 1990년 여권은 3당 합당을 통한 호남 포위 전략으로 지지층을 재편했고, 1997년 야권은 이 구도를 허무는 지역별 연대전략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지역구도에 이념대결이 덧칠됐다. 여야 모두 지역구도 타파를 외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역구도는 기성 정당의 든든한 동아줄이었다.

안철수 바람에 이은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호된 심판을 받았다. 기성 정당의 메시지가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정치권 변방에 머물던 ‘제3그룹’이 중심부로 진입했다. 최근 여론조사 추세를 보면 내년에도 이 기세는 꺾이지 않을 태세다. 지역구도보다 세대와 계층별 표심(票心)이 더 강화되는 추세도 이를 뒷받침한다. “정당을 기반으로 한 대의민주주의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거대 정당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구태(舊態)로 비쳤다. 여권의 한 중진이 “정치는 분명 지력(地力)을 다한 것 같다. 이젠 객토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V. O. 키는 미국 선거과정을 분석하면서 대략 30년 주기로 정당의 지지 기반이 재편되는 선거가 있었고, 이런 선거를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로 개념화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맞붙은 1987년 대선이 1987년 체제를 만들었다면 내년 총선과 대선은 2012년 체제를 여는 중대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여야는 아직 거대한 물결의 파장을 못 느끼는 것 같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세론’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대세론은 없다”고 선언했지만 한나라당이 ‘박근혜당’이 된 상황에서 이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럴수록 박 전 대표 측은 대선 경선후보 풀을 더 넓히는 선제적 대응을 해야 한다. 한나라당의 존재 가치에 경고음이 켜졌다면 이 틀을 뛰어넘는 창조적 발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그들만의 리그’에 맴돈다면 변화의 흐름에 담을 쌓는 것이다.

민주당 사정도 비슷하다. 온통 대통합이니, 소·중 통합이니 하는 정치공학만 난무하고 있다. 통합의 비전 없이 ‘반MB(이명박)’ 정서만으로 집권할 수는 없다. 민주당은 의석 6석의 민주노동당 눈치를 살피느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반대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인 ‘능동적 개방전략’을 포기하는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한미 FTA에 반대하는 심상정 당시 진보신당 대표를 비판하며 개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금 민주당은 지켜야 할 가치와 버려야 할 가치를 크게 혼동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기존 정당시스템에 근본적 의문을 던져야 한다. 당명 바꾸고 얼굴 손질하는 수준의 땜질식 처방은 국민을 너무 얕잡아보는 것이다. 정당의 구태의연한 당원 동원 조직을 다 도려내고 시대정신에 맞는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혁명적 처방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012년 체제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