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재기]우리 주변의 생활방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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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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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기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이재기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서울 주택가 도로가 인공방사능에 오염된 사실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다행히 이로 인한 주민의 방사선 피폭은 연간 0.5밀리시버트 수준으로 자연방사선량보다 적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래도 주민은 꺼리고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불안한 모양이다. 국민은 혹시 우리 동네에도 오염된 도로가 없을지 걱정한다.

연간 0.5밀리시버트 정도의 추가 피폭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이렇게 낮은 방사선량에서 암이나 다른 질환이 증가한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고 사는 지역과 주거 형태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자연방사선 피폭량 차이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변 도로가 인공방사능으로 오염됐다는 사실에 주민이 화낼 만하지만 과민 반응하는 것은 해당 지역을 위험한 곳으로 오해하게 함으로써 ‘낙인’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도로 포장재가 인공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것은 관리체계를 이탈한 방사성물질이 재활용 고철과 함께 용해될 때 오염된 슬래그를 골재로 활용함으로써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사한 오염사례가 외국에서 있었기에 주요 제철사업자는 반입 고철에 방사성물질 혼입을 검사하는 감시기를 운용하고 있다. 발견된 오염은 이런 감시가 미진한 시기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철사업자는 반입 고철뿐만 아니라 반출 철재나 슬래그, 용광로 분진 수거물에 대한 방사능 오염 검사체계를 확고히 해야 한다.

이 사건은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규제를 받는 인공 방사성물질에 의한 것이지만 생활 주변에는 그렇지 않은 천연 방사성물질에 의한 피폭도 있다. 대표적인 게 주거공간 공기 중 라돈 방사능에 의한 피폭이고, 지각에서 오는 방사선 피폭이나 비행 중 받는 우주방사선 피폭도 있다. 광물 이용 과정에서 광물에 함유된 천연 방사성물질에 의한 피폭도 있다. 수년 전 광물로 제조한 온열매트의 방사능이 문제되기도 했다.

이들 천연 방사능은 성격상 원자력안전법의 규제 대상이 아니고 다른 법률에서도 따로 규정하지 않아 오랫동안 방치돼 왔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피폭하는 평균 자연방사선량이 연간 3밀리시버트를 넘고 어떤 사람은 10밀리시버트 이상 피폭한다는 점에서 이를 관리하기 위해 정부는 6월 생활주변방사선안전관리법을 신설하고 시행을 준비 중이다. 바람직한 일이다.

새로운 규제를 도입할 때는 위험 감축에 비해 과잉규제로 국민 부담을 키우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가령 항공승무원의 우주방사선 피폭량은 여느 방사선작업자 못지않으나 매우 안정적이고 탑승 기록으로 피폭량을 평가할 수 있는 만큼 별도의 적극적 관리대책은 필요하지 않다. 승무원에게 방사선 피폭 사실과 위해수준을 교육하고 ‘동의’를 얻어 직무피폭자로 등록해 평가된 선량을 기록하고 유지하는 최소한의 관리로 충분하다. 또 현행 규정의 기준 농도를 초과한다고 우발적 과피폭 우려가 없는 천연 광물을 인공 방사성물질처럼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도 불합리하다. 가장 큰 피폭원인 라돈에 대한 관리체계가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건 유감이다. 주택, 공공건물, 직장의 라돈 관리를 어느 부처가 할 것인지, 라돈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져 측정이나 감축 요구가 증가할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준비가 필요하다.

도로에 인공 방사능 오염이라는 깜짝 사건에 슬기롭게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알게 모르게 훨씬 많은 피폭을 주고 있는 생활 주변 방사선으로부터 국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가 사실 더 중요하다. 생활주변방사선안전관리법이 국민의 불편을 더하기보다 방사선 위해를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시행되기를 바란다.

이재기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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