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국회를 방문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핵심 쟁점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의 재협상을 보장하는 제안을 했다. 국회가 한미 FTA를 비준하면서 ISD 재협상을 권고하면 한미 FTA 발효 이후 3개월 안에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대통령은 “미국이 응하지 않으면 책임지고 설득하겠다”는 말도 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최소한 ISD 조항은 폐지돼야 한다”면서도 대통령의 제안을 당에 전달해 의견을 구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제안은 지난달 민주당 지도부의 거부로 불발에 그친 한나라당과 민주당 원내대표 간의 합의안과 비슷하다. 그러나 당시 합의안은 여야 간 협상의 결과였을 뿐 정부가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찾아가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타협안을 제시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정부가 사실상 ISD 재협상을 보장한 셈이다. 민주당이 ISD를 이유로 그동안 한미 FTA 비준안에 반대해온 것이라면 이제는 비준안 표결에 응해야 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일각에서는 한미 FTA 비준안을 여야 합의를 통해 처리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두 당의 협상파 의원 8명은 ‘ISD 절충안’을 고리로 비준안을 일방 처리하지도 않고, 물리적인 저지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이들은 6인 협의체를 구성해 두 당 의원들을 상대로 서명을 받는 작업에 나섰다. 상당수 온건파 의원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타협이 실종되고 폭력이 난무하는 우리 국회에서 합의 처리의 선례를 만들어가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정도와 때가 있다. 미국은 이미 발효를 위한 비준 절차를 끝냈다. 우리도 여야가 끝장토론까지 벌이며 모든 사안을 논의할 만큼 논의했다. ISD는 4년 전 노무현 정부가 체결한 협정 원안에 들어있던 것으로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투자자 보호 장치다. 미국과 일본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한미 FTA를 발효시키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
민주당이 야권 통합이라는 정파적 노림수 때문에 한미 FTA를 희생시킨다면 국민의 호된 질책을 각오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 비준안의 합의 처리가 최선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합의가 불가능하다면 의회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차선책을 강구해야 마땅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다수결 원칙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