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동원]룰라 이펙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6일 03시 00분


김동원 국제부 차장
김동원 국제부 차장
올해 인상 깊은 장면을 몇 개 꼽으라면?

기자는 브라질 룰라(본명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의 퇴임식 장면이 생생하다.

#.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나를 믿고 선택해준 국민에게 감사한다.”

올해 1월 1일(한국 시간) 8년간의 임기를 마친 그가 퇴임식에서 이렇게 울먹였다.

국민도 함께 울었다. 대통령 궁을 떠날 때 시민들은 아쉬움의 박수로 그를 따뜻하게 품었다. 감동적이었다.

한 시민은 “(연임을 금지한) 법을 바꿔서라도 룰라 대통령이 계속해야 한다”고 절규하는 모습도 당시 TV 화면에 잡혔다.

퇴임 직전 룰라의 지지율은 놀랍다. 무려 87%로 전무후무하다. 취임 직후 지지율이 7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물러날 때의 지지율이 오른 현대사의 이례적 사례로 꼽힌다.

오죽하면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룰라 대통령은 내 우상이다. 그를 존경한다”고 말했을까. ‘레임덕’이라는 용어마저 무색하게 만든 룰라 이펙트(Lula Effect)가 브라질을 세계 8대 경제대국으로 탈바꿈시킨 것.

브라질에 진출한 한국 금융기관의 현지 법인장을 맡고 있는 지인은 “지도자가 국가를 바꾸는 과정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라며 “세계적 금융기관들이 브라질로 몰려오는 것도 결국은 룰라 효과”라고 전했다. 포스코가 브라질에 제철소를 짓고 현대자동차가 현지에 완성차 공장을 건설 중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며칠 전 물러난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퇴임 장면은 정반대다.

로마의 총리 관저 주변에 모여 있던 수천 명의 군중은 베를루스코니가 총리 공관을 떠나자 “잘 가라, 실비오”, “마침내 그가 떠났다”며 환호하며 춤을 췄다. 일부 시민은 주먹을 내 보이며 분노와 조롱을 쏟아 냈다.

두 지도자 명운을 갈라 놓은 배경은 뭘까. 외신은 룰라가 자신을 대통령이 아닌 선장(船長)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선원들의 생명이 자신에게 달렸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국정을 펼쳤다는 얘기다.

실제로 선장 리더십 사례는 여러 차례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2년 전 해적들에게 붙잡혔던 미국 컨테이너선 앨라배마호의 리처드 필립스 선장이 대표적인 예. 해적에 잡힌 지 5일 만에 영화 같은 구출작전이 펼쳐져 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필립스 선장이 선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인질을 자처하고 스스로 해적에 잡혔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지자 미국 사회는 감동했다.

2009년 초 미국 뉴욕 허드슨 강에 대형 항공기가 비상착륙하는 절체절명의 상황도 비슷했다. 자칫 탑승객 전원이 몰사할 뻔한 순간이었다. 기장(슐렌버거)의 탁월한 위기관리 덕분으로 155명 승객이 전원 구조된 사례는 지도자의 헌신이 왜 중요한지 보여줬다.

“비행기에서 먼저 탈출하면 살 수 있다는 유혹이 있었겠지만, 유혹을 던지고 끝까지 승객과 생사를 함께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진정한 리더”라는 심리학자의 분석은 그래서 더욱 새롭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우리 사회도 이런 리더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지고 있다.

요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대립에서도 자신을 던지는 리더십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 등 여야 지도자들도 물러날 때 눈물 어린 박수를 받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김동원 국제부 차장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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