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상대]공공건물 최저가 낙찰제와 상생정책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7일 03시 00분


김상대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
김상대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
최근 정부는 중소기업의 어려운 여건을 고려해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다. 사실 중소기업이 견실해지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 청년실업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독일과 스위스 등의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 즉 강소기업의 국제적 위상을 보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정책의 방향이 보인다.

우리 정부는 공공건물에 대해 최저가 낙찰제를 시행하고 있다. 업체 간 가격경쟁을 통해 정부의 예산을 줄이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기업의 기술개발을 통해 공사비를 줄이도록 유도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몫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기술개발을 통해 원가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무조건 수주 우선’ 방침으로 도저히 공사를 수행할 수 없는 가격으로 입찰에 뛰어든다. 그리고 수주한 공사는 기술개발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업체의 용역비를 줄여 해결하려고 한다.

저가로 수주한 대기업에도 애로사항이 많겠지만 그 공사를 실제로 수행하는 협력회사들의 고충은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다. 직원들의 급여는 다른 산업분야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미래 성장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는 꿈도 꾸지 못한다. 이런 회사에 정부가 아무리 외쳐도 젊은 학생들이 취업하려 하지 않는다. 정부는 “서민을 위하고 중소기업을 보호하려 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정부의 정책이 중소기업(협력회사)의 발전을 저해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공공건물을 지을 때는 몇 가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우선 작품성이 우수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유지관리비가 적게 드는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 친환경 녹색정책에도 부합하는 설계가 돼야 한다. 그리고 전체 공사비를 절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보지 않고 공사비 하나만으로 결정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 설계 심사에서 1등을 차지한 작품이 저가의 공사가격 때문에 뒤집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가격을 중심으로 하는 최저가 낙찰제를 우선시하려면 설계 심사제도는 왜 필요한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최저가 낙찰제의 폐단을 경험한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는 이 제도를 더는 채택하지 않는데 우리 정부는 오히려 소규모(100억 원 이상) 공사에도 확대 적용하려고 한다. 이것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진정한 상생정책을 추구한다면 최저가 낙찰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그 기업에서 심각한 저임금으로 고통 받는 근로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최저가 낙찰제는 국가의 문화수준을 제고하고 여전히 해외에서 외화를 끌어오고 있는 ‘건축’이라는 훌륭한 산업분야를 ‘3D’ 업종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김상대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