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호주 총리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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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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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전 호주의 첫 여성 내각수반으로 선출됐을 때만 해도 줄리아 길라드 총리는 “외교는 나의 ‘열정’이 아니거든요”라고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젠 외교에 자신감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키스를 보면 알 수 있다. 취임 초기엔 외국 정상들과 회담할 때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더니 요즘은 상대방 정상들의 볼에다 키스를 너무 많이 해주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지난주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장에서 길라드 총리가 이 대통령의 뺨에 립스틱을 묻혔다 닦아주는 장면도 화제에 올랐다.

▷길라드 총리는 “외교란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니 개인적으로 통하는 사이가 되면 더 좋다”면서 이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고 호주 신문 디에이지가 전했다. 길라드 총리는 16일엔 역시 호주를 방문 중이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뺨에 키스를 했다. 중국의 부상(浮上)으로 호주의 전략적 위치가 재평가되면서 내년부터 호주 해군기지에 미 해병대가 주둔하게 됐다. 호주는 유럽과 너무 떨어져 있어 유럽으로부터 소외됐고, 아시아 나라들과도 역시 지리적으로 멀어 이방처럼 느껴졌던 나라였다. 그러나 지금 호주는 오바마 대통령이 선언한 “21세기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중심국가로 떠올랐다.

▷호주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20년간 중단 없는 성장(연평균 경제성장률 3.4%)을 지속하고 있다. 1997년 아시아를 휩쓴 외환위기에도, 2001년 미국을 흔든 경기침체에도, 최근 수년간의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끄떡없다. 풍부한 광물자원 덕이 크지만 더 큰 힘은 1983년부터 20년간 계속한 ‘개방화 유연화 개혁’에서 나왔다.

▷노조 간부 출신으로 1983년부터 1991년까지 노동당 정부를 이끈 로버트 호크 총리가 시작한 규제 철폐와 금융개방 개혁은 정권이 바뀌어도 후퇴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선 하다 말다 하는 개혁을 꾸준하게 추진했다. 호주의 걱정거리라곤 기후변화 대처와 대학 경쟁력, 안보 정도다. 미 해군의 주둔을 허용하면서 중국에는 ‘위성추적 지상국’의 설치를 허가할 만큼 길라드 정부의 외교는 유연하다. 경제력과 외교력, 길라드 총리의 자신감 어린 키스가 호주 전성시대를 열고 있는 느낌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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