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우리가 돼지냐”던 의원들의 예산 나눠먹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2일 03시 00분


국회가 어제부터 예산안 조정 소위원회를 가동해 내년 예산안에 대한 본격 감액 증액 심사에 나섰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은 326조1000여억 원이었으나 국회 상임위를 거치면서 9조500여억 원이 증액됐다. 12인 계수조정소위가 이렇게 자신과 동료의원 지역구 예산을 ‘쪽지 예산’으로 끼워 넣다 보면 나라살림의 기본인 예산이 누더기가 되고 말 것이다.

국토해양위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에 3조5320억 원을 늘렸다. 정부 예산안에 없었으나 상임위에서 추가된 사업이 20건(930억 원)으로 지난해 8건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도로망이 부족하지 않으므로 당분간 신규사업은 벌이지 않는다는 정부의 정책을 뒤집었다. 교육과학기술위는 반값 등록금 관련 예산을 4000억 원 증액했다. 여야의 복지 경쟁으로 기초노령연금 5880억 원 등 보건복지위 예산이 1조380억 원 늘어났다. 여기에다 계수조정소위 위원들은 8건에 대해서만 감액하고 81건의 증액을 요청해 총 8조3880억 원이 늘어날 판이다.

여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놓고 사생결단을 벌이면서도 선심성 예산 증액에는 찰떡 공조를 보였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올 7월 “포크배럴(pork barrel)에 맞서 재정규율을 확립하겠다”고 말하자 정치권은 “국회를 돼지에 비유했다”며 박 장관을 혼냈다. 포크배럴이란 돼지고기를 소금물에 담가 보관하는 통을 일컫는 단어였으나 냉장기술이 발달하면서 뜻이 달라져 정부 보조금을 경쟁적으로 따내려는 정치권을 비판하는 속어로 쓰이고 있다. 의원들이 지역구 선심성 예산을 챙기기 위해 국고(國庫)에 머리를 들이미는 행태는 ‘돼지’라는 단어가 들어간 속어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예산지출을 늘리려면 국민 세금부담도 증가한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내년 경제성장률 수정전망치는 3.8%로 예산안이 상정한 4.5%보다 낮다. 성장률이 낮아지면 세수(稅收)도 줄어들고 나라살림이 적자가 난다. 예산을 줄여도 빠듯한데 정치권이 포퓰리즘적 지출 늘리기에만 신경을 쓰니 재정건전성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

계수조정소위가 상임위가 증액한 예산안을 철저히 심사해 대폭 삭감해야 한다. 애초의 정부안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손질해야 함은 물론이다. 국회는 그리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이 예산 퍼주기를 하다가 나라살림을 거덜 낸 사태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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