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제 FTA를 넘어 정치 선진화할 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3일 03시 00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2007년 6월 한미 양국 간 협정 공식 서명 이후 4년 5개월 만인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미국 상하원이 지난달 13일 한미 FTA 이행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우리도 비준안과 부수법안 처리를 완결함으로써 한미 FTA 발효를 위한 양국의 입법 절차가 완료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미 FTA 리더십이 이명박 정부에서 마침내 빛을 발하게 됐다.

험난한 고비를 넘겨 다행이지만 상처와 후유증이 작지 않다. 여야가 비준안 표결 처리에 합의하지 못해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기습 처리에 반발해 모든 국회 일정의 중단을 선언하고 본회의장에서 항의농성에 들어갔다. 여야가 극한 대결로 치달으면 내년 예산안이 제때 처리되지 못해 민생에 타격을 입힐 우려가 크다.

국가적 대사(大事)가 여야 간 타협과 합의로 원만하게 처리되지 못한 것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다시금 보여준다. 18대 국회에서는 쇠망치가 난무하더니 급기야 최루탄까지 등장했다. 어제 민주노동당 소속 김선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을 터뜨린 행위는 의회민주주의를 유린한 테러다. 엄격히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한나라당이 한미 FTA 비준안을 전격적으로 처리한 것은 야당의 무조건적인 반대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우리는 본다. 여당이 전체 의석의 60% 가까운 169석을 갖고도 야당에 무기력하게 끌려다닌다는 비판을 받았다. 야당의 요구로 국회에서 끝장토론을 하며 여야 간에 비준안을 둘러싼 논의를 할 만큼 했다. 야당이 주장하는 피해 분야에 대한 대책도 상당한 정도로 마련했다. 이번 비준안 처리에는 한나라당 외에 자유선진당과 미래희망연대 소속 의원들도 동참했다. 사실상 한나라당 단독 처리지만 국회법에 따른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다.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장을 3주째 점거하며 의사진행을 물리적으로 방해한 야당은 ‘날치기’ ‘쿠데타’ 운운할 자격이 없다.

민주당은 처음엔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으로 양국 간 이익 균형이 깨진 것을 트집 잡다가 나중에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걸고넘어졌다. ISD는 노무현 정부가 체결한 협정 원안에 들어 있던 것으로 민주당이 새삼 문제 삼은 것은 반대를 위한 억지였다. 더구나 이 대통령이 국회를 직접 찾아 ‘비준 후 재협상’을 약속했건만 민주당은 요지부동이었다.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의 완고한 반대에 한미 FTA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온건파 의원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목소리가 묻혀버렸다.

대의민주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은 기본이지만 타협이 불가능할 땐 다수결 원칙에 따른 표결로 의사를 결정해야 한다. 의사진행의 기본 원칙이 실종되다 보니 정파 간 극한 대립이 그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이성보다 감성에 이끌리고 터무니없는 괴담이 난무하는 것도 정치권의 책임이 작지 않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염증이 고조돼 있다. 여야 모두 획기적인 탈바꿈을 하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어렵다. 지금과 같은 대결 정치가 지속된다면 기성 정치권이 공멸할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한미 FTA와 별개로 2012년 예산안 처리는 법정 시한(12월 2일) 내에 이뤄져야 한다. 야당이 주장하는 이른바 ‘한미 FTA 무효 투쟁’은 의미 없는 정치공세다. 이제는 한미 FTA를 둘러싼 갈등을 넘어 민생을 어루만지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해야 한다. 국회 운영을 선진화하는 데 정치적 에너지를 결집할 필요가 있다.

한미 FTA 비준안 처리로 정부와 한나라당이 할 일을 다 한 것이 아니다. 정권의 임기가 15개월이나 남아 있다. 한미 FTA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면서 경제 민생 안보를 세세한 곳까지 챙겨야 국정 누수(漏水)를 막을 수 있다. 국방개혁안을 비롯해 아직 처리되지 못한 채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주요 국정 과제들이 많다. 때로는 국민에게 호소하고, 때로는 설득하면서 국가와 국민의 장래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집권당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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