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법륜 스님의 ‘정치 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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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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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실장
황호택 논설실장
안철수 씨의 제3신당과 관련해 관심을 끌고 있는 법륜 스님은 원래 활동의 폭이 넓은 승려다. 2002년 스님이 막사이사이상을 받았을 때 필자는 신동아 9월호에 상당히 긴 인터뷰를 게재한 적이 있다. 작년 12월에는 청암(포스코 박태준 명예회장의 아호) 봉사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수상 후보였던 그를 다른 심사위원들과 함께 장시간 공동 면담한 적이 있다. 그 결과로 스님은 올해 2월 청암봉사상을 수상했다.

법륜 스님은 인도에서 젊은 어머니와 아이들이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 인류의 양심을 지키는 일이라는 뜻에서 JTS(Join Together Society)를 설립했다. JTS는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스리랑카에 학교를 세워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식수 및 농업용수 개발을 돕고 있다.

법륜 스님은 1995년 중국에 갔다가 인도보다도 더 어려운 북한 사정을 확인하고 “북한에 대해 나쁘게 생각한 것만이 편견이 아니라, 좋게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북한의 양로원과 고아원 등 53개 시설에 매년 50억 원어치씩 두유 밀가루와 이유식을 공급하고 있다. 필자는 JTS 사무실에서 눈가가 촉촉해지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식품을 실은 JTS 차량이 시설 안으로 들어가자 팔다리가 가는 북한 아이들이 뛰어나와 열렬히 환영하다가 차량이 떠날 때는 아쉬운 표정이 얼굴에 가득했다. 스님은 북한주민 지원 사업을 하면서도 북한에 가보지 못한 유일한 사람이다. ‘좋은 벗들’이라는 단체를 통해 탈북자들을 지원하고 북한의 인권과 국경 소식을 담은 뉴스를 제공해 북한 당국으로부터 기피 인물로 찍혔다.

‘평화재단’의 좌우파 공존

그는 경주고교 1학년 때부터 불교에 심취해 불교학생회 부회장을 했다. 고교 3년 내내 학교 옆 분황사에서 숙식을 했다. 대학생 불교연합회 지도법사이던 그는 신군부가 일부 비리 승려들을 체포해 가혹한 고문을 가한 1980년 ‘10·27 법난(法難)’의 부당성을 처음으로 사회에 고발하다 구속되는 수난을 겪었다. 종교비리는 개신교에도 있는데, 신군부가 승려를 삼청교육대에 보내는 식으로 불교계만 때린 것은 공평하지도 않고 방법도 잘못됐다는 인식이었다.

법륜 스님은 속가(俗家)에서 4남 2녀 중 막내(속명 최석호)였다. 무소유 공동체 ‘푸른 누리’를 운영하는 셋째 형 최석진 씨는 1979년 적발된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 관련자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84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법륜 스님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1979년 경찰 대공분실에 불려가 며칠 동안 두들겨 맞고 물고문을 당했다”고 말했으나 형과 관련된 문제였는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못했다.

사상과 이념은 부자(父子)간 형제간에도 다르고, 한 사람의 일생에서도 변화를 겪는다.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였던 프랑수아 기조(1787∼1874)는 “20대에 공화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심장이 없고, 30대에도 공화주의자로 남아있으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남겼다. 윈스턴 처칠, 조지 버나드 쇼 등이 이 명언에서 공화주의자를 사회주의자로 바꾸어 써먹으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뀐다. 어떤 이의 사상적 편력이나 연좌(緣坐) 관계를 언급할 때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스님은 좌우통합을 강조한다. 그가 설립한 평화재단 지도위원에는 백낙청(재단법인 시민방송 이사장) 문규현 씨(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같은 진보좌파와 윤여준(한나라당 전 여의도연구소 소장) 박세일 씨(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같은 보수우파가 동거하고 있다.

성직자 정치활동 한계 지켜야

법륜 스님은 “승려가 주례를 한다고 결혼(정치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필자와 통화에서 거듭 “승려가 왜 정치를 하겠느냐. 신당 창당에 개입하거나 참여할 생각이 일절 없다. 청중의 질문에 답변을 피해갈 수 없어 가정법으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회창 의원은 “대중 집회에서 안철수 신당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정치”라고 꼬집었다. 법륜 스님은 바쁜 와중에도 수십 권의 책을 저술했고 그중에는 ‘엄마 수업’ ‘스님의 주례사’ 같은 책도 들어 있다. “여자가 대통령 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는 말도 ‘엄마 수업’의 연장선에서 한 말이겠지만 박근혜 의원 쪽에서 들으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일부 개신교 목사들은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그렇다고 해서 승려가 제3신당이나 특정 대통령 후보를 띄우는 것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스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가 불교계의 테레사 수녀나 김수환 추기경 같은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 스님이 정치 근처에 서 있다가 행여 탁한 동네의 구정물을 뒤집어쓸 것 같아 걱정스러운 눈치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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